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jin Park May 29. 2019

5월,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이미 끝났다고!!

살고 싶은 곳을 스스로 만들기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

도쿄의 오래된 상점가 고엔지에 ‘아마추어의 반란’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재활용품 가게를 차려놓고, 이곳을 거점 삼아 ‘게릴라’처럼 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쟁과 효율을 섬기며,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돈을 쓰며 살게 하는 소비사회를 거부하며(노인들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터무니 없는 말을 하지만 그런 세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어! 끝났다고!) ‘가난뱅이’이자 ‘얼간이’로 살아남고자 합니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웬걸 이들이 살아남은 지는 15년이나 지났고 재활용품 가게는 식당으로, 술집으로, 게스트하우스라는 ‘지점’을 거느리며 성업 중인데다, 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일본뿐 아니라 세계의 자칭 ‘얼간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실정이지요. 


이 책은 ‘아마추어의 반란’을 처음 만든 활동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공개하는 ‘생존 노하우’입니다. 추상적인 원리원칙이 아닌 당장 실전에서 써먹을 만한 구체적인 가이드로 가득한데요, 유쾌하다 못해 때론 뻔뻔해 보이는 그(와 친구들)의 경험담을 실행에 옮겨보려면 약간의 용기와, 대책 없는 유머 감각이 필요해보이지만 돈 없이도 이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니! 하는 깨달음에 마음 한 구석에 쭈그러들어 있던 명랑이 마구 솟구치고 맙니다.  

생존은 사람들을 모으고 동료를 만드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되겠어? 라는 일들을 되도록 만들려면 돌진형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한 데 부르기는 쉽지 않으니 엉뚱한 사건을 벌여봅니다. 이를테면 한 해의 마지막 날 지하철 안에서(역이 아니고) 술자리 벌이기! ‘가난뱅이 당신’을 호객하는 전단 뿌리기! 이상한 노점상 차려 물건 팔기! 등등.


동료들이 어느 정도 생겼다면, 언제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어봅니다. 물론 이 돈 버는 방법도 평범하지는 않죠. 벼룩시장 참여, 각종 기금 후원 받기는 양반이고, 위조지폐 만들기나 동료 한 명을 유명인으로 ‘만들고’ 기념품 판매 등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손에 쥐는 순간 깔깔대며 단숨에 끝까지 읽게 하는 책입니다만, 이들이 단지 재미만을 위해 이렇게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돈에 목을 메고, 다른 사람들을 이기며 살아야 하는지 그렇게 이루어진 사회의 번영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희망이 되었는지…를 자신들의 삶으로 묻고 있는 것이지요. 재미라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힘을 자신의 고민과 지향에 따라 발휘하는 것, 저마다의 개성과 재능을 표출하는 것,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 어울려 해보는 것, 뭔가 거대한 것이 자신을 먹어 삼키고 있다는 감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렇게 지금 여기에 살고 싶은 곳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 쓸모없는 소식투성이야. 우울한 이야기나 괴로운 뉴스밖에 없어. 돈 많은 녀석들은 나쁜 짓만 골라서 하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취직을 생각해야 하는 분위기고, 돈 없는 한량들은 거리에 나가기만 해도 주눅이 들어. 고도 성장기에 꿀만 빨던 일부 노인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지만 그런 세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어! 끝났다고!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놓으면 사회가 더 풍요로워진다고 말하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업무만 늘어나서 오히려 바빠지기만 해, 젠장! 

그러나!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얼간이들은 이제 그딴 가치관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렇지! 이왕 이렇게 됐으니 이따위 세상 개나 줘버리고 제멋대로 살아버리자고! 게다가 벌써부터 완전 끝내주는 것을 만드는 장소,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 정말 바보 같은 예술 공간, 상상도 할 수 없는 라이브하우스, 하등 쓸모없는 공간 등 엄청 자유롭고 멋들어진 장소가 많아. 이제 세계의 멍청이, 바보들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공간을 만들어 제멋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부자 놈들이나 대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미친 듯이 일해서 미친 듯이 돈을 쓰는 소비사회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18)


예전에도 계속 빙글빙글 도는 야마노테 선에서 게릴라 대잔치를 열었지~. 게다가 12월31일은 24시간 운행이라 막차가 없다고! 와! 진짜 굉장하잖아!

이미 새벽 1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어. 일단 한가한 녀석들을 야마노테 선의 맨 앞 차량에 태운 후 앞뒤 따지지 말고 한가운데에 좌식 탁자 설치! 술 한 병을 천천히 마시기 시작해. 그러면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누군가 “좋아 보이네요~” 흰소리를 하며 말을 걸어와. 이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바로 “자, 한잔 받으세요!”하고 건네면 같이 마시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 게다가 잔뜩 준비해둔 종이컵을 승객들에게 나눠준 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술을 따라주면 이게 또 뜻밖에 반응이 좋아! 그렇지! 역시 새해 첫날 새벽. 무엇을 하든 ‘다 경사’가 된다고. 일본에서 제일 어리벙벙한 날이라니까. 정말 멋지지 않아?

눈 깜짝할 새에 모르는 사람들이 흥겨운 잔치를 여는 진짜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다음 역에서 차가 멈추잖아. 그때 자동문이 열리고 새로 열차를 타는 사람에게도 얼른 컵을 줘. 그러고는 “안녕하세요~” 인사한 뒤 술을 따라주니까 생각지도 못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들도 “아이고 웬 떡이야”하면서 받아 마셔.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엄청난 인원의 대잔치가 되어 야마노테선 일대가 대 소동!!

대다수 사람들이 처음 만난 데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축하를 했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즐거운 술자리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24~25)


일본에도 봉이 김선달 같은 노점이 있어. 노상에서 술잔치를 자주 벌이던 때에 시모키타자와에 자주 갔는데 거기에 정말 수상한 사람이 있었어. 엄청 낡고 더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데다 타고 있던 자전거에 물건을 쌓아 올려서 눈에 확 띄었어. 근데 “보면 10엔”이라고 써서 붙여놨잖아! 와 굉장한 상술이야! 슬쩍슬쩍 보는 사람이 많아서 돈벌이가 되겠다 싶어 시작했다더군. “돈 내는 사람이 있나요?” 하고 물어보니 “의외로 있더라고. 근데 도망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더니, 그 후론 다들 나랑 눈이 맞으면 급히 눈을 피하고 잽싸게 도망친다니까” 해. 어라? 이거 친구 만들기 편이었지? 도망쳐버리면 안 되지!! 이건 따라 하지 마셔~.(47)


가게에 오는 손님과 이상하게 사이가 좋아진다는 점도 재미있어. 들여온 물건을 가격 그대로 팔기만 하는 평범한 가게가 아니니까 손님이 물건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해. 그러면서 상품 상태에 대해서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지. 재활용품 가게는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서 여러 사람이 오고 가. 오가는 사람들도 거의 지역 사람들이야. 인간관계가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대화를 많이 주고받으면 이상하게 흥이 나고 재밌어. 

덧붙여, 한쪽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 팔고, 다른 한쪽은 끊임없이 사서 버려야 유지되는 이런 소비사회에서 물건을 재활용하는 일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세상에 아첨 떠는 인상 나쁜 기업인 아저씨들은 이 세상에서 재활용품 가게 따위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 미안,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되진 않을 걸~.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월, 거창한 아이디어 말고 그저 훈훈한 소문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