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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y 27. 2019

5월, 함께 춤추듯 함께 일한다는 것

일터 바꾸기 <투게더>

요리를 배우고 싶어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자취 경력이 길었던 터라, 어지간한 요리는 웬만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로써 요리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더군요. (어쩌면) 요리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료들과 ‘합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의 사람들은 식재료를 보관한 냉장고 앞, 칼과 도마가 있는 조리대 앞, 불길이 치솟는 화구 앞 등 각자의 자리로부터 먼저 해야 할 작업과 나중에 할 작업, 그것에 필요한 도구와 그 위치, 그 작업들이 특정 동료와 이어질 타이밍, 동료들의 예상 경로에 부딪치지 않는 동선 등을 파바박, 계산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러 개의 주문이 동시에 들어오면, 처리해야 할 단계와 고려할 변수는 당연히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계속 주변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예기치 않은 상황에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논리적이고도 직관적인 일이지요. 


합이 잘 맞는 주방은 그래서, 조화로운 군무가 펼쳐지는 무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능숙할 뿐 아니라, 서로의 경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준은 하루 이틀 사이에, 또는 속 시원한 대화나 뜨거운 열정만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방 집기들과 동료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환희를 느꼈던 어느 날, 돌아봤을 때 우리 사이에는 단단한 신뢰가 쌓여 있었습니다. 아, 하면 어, 하고 알아듣고 어떤 리듬 속에서 동료가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런 신뢰, 그리고 존중 말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다른 일 경험에서는 느끼지 못한 마음이었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현대 사회는 구조적으로 협력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며, 특히 일터에서의 협력의 경험이 줄어든 것이 주요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대규모 조직 내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현대적 경영법,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일자리의 증가 등에 의해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타인과 마주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관계를 깊게 맺고, 다름에 반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결과는 단순히 일터에서의 인간다운 분위기나 조직에 대한 애착이 줄어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넷은 우리가 “차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성향을 가진 인물형” 즉, 잔뜩 움츠러든 수동적 인간들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윤리보다는 편리를 좇고, 무기력에 시달리며, 마땅히 분노해야 할 불평등과 차별에 눈감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협력하는 능력을 다시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넷은 장인들의 공동 작업, 음악가들의 합주, 공동체를 이루려는 역사적 시도 등의 사례로부터 화법으로부터 처세에 이르기까지 협력을 도모하는 구체적인 기술들을 추출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매일의 사회생활 속 실천이 쌓여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된다고 성실하게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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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에서 내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responsiveness, 즉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skill 또는 작업 과정이나 공동체 활동에 그런 반응 능력을 실제로 적용하는 문제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함께 일하는 것에는 분명 윤리적인 면모가 있다. 그렇지만 협력을 그저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이해는 제약된다. 훌륭한 장인-과학자craftsman-scientist는 최고의 원자탄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아 붓겠지만, 강도 행각을 벌이는 사람도 그와 똑같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립하기에는 능력이 충분치 않아 협력하는 경우에도, 우리는 여러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가 타인들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에게 무얼 원하는 것이 마땅한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따라서 나는 협력을 하나의 실기craft로 탐구하고자 했다. 함께 행동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분명한 해답조차 없는 형극의 길이며, 흔히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진다.(18)


물질적이고 조직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문화적 압력cultura forces도 협력을 요구하는 관행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현대 사회는 해로운 인성 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성향을 가진 인물형이다. 정치적이든, 인종적이든, 혹은 종교적이든, 민족적이든 심지어 에로틱한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분야에서의 불안감도 모두 해당된다. 이런 새로운 인물 유형의 목표는 흥분을 피하고, 심각한 차이가 도발하는 자극을 최대한 느끼지 않는 것이다. 퍼트넘이 말하는 움츠러들기withdrawal는 이런 도발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취향의 획일화도 그러한 방법 중 하나다. 문화적 획일화는 현대의 건축, 의상, 패스트푸드, 대중음악, 호텔 등 세계화된 것들의 끝없는 목록에서 뚜렷이 보인다. “누구나 기본적으로는 똑같다”는 말은 중립성을 추구하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차이를 중화하고, 그것을 길들이려는 욕망은 차이에 대한 불안감에서 솟아난다 그런 불안감이 전 세계적인 소비자 문화의 경제학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고집스럽게 타자로 남아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려는 욕망의 약화 현상으로 나타난다.(31)


대개 소통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잘 설명할지, 어떻게 명료하게 표현할지에 집중한다. 그렇게 하는 데도 기술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뭔가를 진술하고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 비해, 잘 듣는 데는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전에 무엇을 말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는 기술, 발언만이 아니라 동작과 침묵까지 파악하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잘 관찰하기 위해 스스로는 말을 자제해야 할지는 몰라도, 그 결과 나누게 되는 대화는 더 풍부한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더 협동적이며 더 대화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40~41)


프랜시스 존스턴의 가장 유명한 사진은 남자 여섯 명이 계단을 만드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여섯 명은 각기 다른 기술을 쓰지만 한데 뭉쳐 있으며, 각자의 작업에 몰입해 있으면서도 서로를 인식하고 있다. 이 사진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마 노동자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일 것이다. 아무 표정도 없다. 각자 자신들이 하는 일에 몰두한 그들의 얼굴은 고요하다. 그 사진이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불끈 쥔 주먹을 치켜들고 연대를 주장하는 식의 선전선동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행복하다거나 특별히 흥분했다는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몰입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존스턴이 이 사진들을 전시한 방식을 보면 마치 무용의 안무에서처럼, 노동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계단을 만드는 각기 다른 단계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의 전 과정이 한눈에 명료하게 들어온다. 작업자들은 서로를 보고 있지 않지만, 그들 동작의 배치도에서는 그들 간의 긴밀한 관련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각자 일하는 태도는 긴장되지 않고 느슨해 보이지만, 사회복지관에서의 편안한 만남처럼 격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힘든 과제를 함께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느슨해 보이는데, 그것은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들임을 감지한다. 배경에 은폐된 사정도 없고, 인물들은 어떤 목표를 위해 제휴하는 사이도 아니다. 계단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그 사진의 구조인데, 그 줄거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들이 공유하는 목표를 형성한다. 프로젝트는 그들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111~112)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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