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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y 21. 2019

5월, 가장 보통의 인연

일터 바꾸기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내가 사는 곳, 일하는 곳, 몸담은 곳들이 결국 나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이 우리를 각자도생에 매달리게 합니다. 지켜주지 못하는 곳들이기에 책임질 이유가 없고,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도 그저 스쳐갈 순간들일 뿐이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영리한’ 일이라고 너무 오래 배워온 우리는, 그 영리의 대가로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웃이라거나 동료, 인연 같은, 관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리키는 말들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신지요. 그 감정은 얼마나 깊고 진한가요. 그리고 그 관계를 품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한때 ‘나에게도 ‘동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동네 만드는 일들을 했었는데, 남의 동네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정말 이 일들이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회의가 밀려왔을 때…… 이 책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드립니다>를 읽었습니다. 바로 “손님과 인연을 끊지 않기 위해 만든” 한끼알바 시스템이 있는 일본 도쿄의 ‘미래식당’ 이야기입니다.   

한끼알바는 누군가 이 식당에서 50분간 일하면 한 끼를 무료로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한끼알바의 자격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한 번 이상 손님으로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을 것.”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나 자격증 보유 여부 같은 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요리 실력이 젬병이거나 주방에서 허둥대는 알바들도 있게 마련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어떻게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줘서 식당 일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단순히 알바비를 아끼거나 마케팅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식당이 누군가에게 ‘안전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미래식당의 사장님은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제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을 때 미래식당에 가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와주었으면 했다”고요.


이런, 도우려는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질 수 있도록 한끼알바 참여자가 자신이 받은 한 끼를 쓰지 않고 남겨두는 ‘무료식권’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한 끼 정말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하는, 이를테면 헌혈 같은 시스템이지요.    


이런 식당이 은근히 성업 중이라니, 신기해서 읽다가, 이런 아이디어가 사장님의 인생과 겹쳐지는 지점에 이르러선 어쩐지 마음이 짠해집니다. 책 제목이자 미래식당의 슬로건인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드립니다”는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드립니다”라는 뜻으로, 저자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몇몇 경험들로부터 비롯했습니다. 그 경험들을 털어놓으며 저자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항상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미래식당에 있는 동안만은’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이 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스템을 설계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식당의 바탕이 되는 ‘그 자리의 성선설’은 저자 혼자가 아니라, 저자의 옷깃을 스친 인연들이 함께 만들어낸 믿음일 겁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두 번째는 대학시절입니다.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편식이 심했던 저는 특히 당근을 좋아했고, 대부분의 반찬을 당근으로 만들었습니다. 당근 샐러드, 당근 조림, 당근 초무침, 당근 영양밥 등등. 보통 사람들이라면 깜짝 놀랄 식단이지만 제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반찬의 대부분을 당근으로 만들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남자친구는 밥상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지만 그냥 말없이 먹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남자친구에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미래식당이 ’그 사람의 보통을 받아들여주는 곳‘으로 ’당신의 보통에 맞춘다‘는 메시지를 내세우는 것은 이 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19)


이렇게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한끼알바생 누구에게나 꼭 하나씩 있었다. 무의식중에 효율성을 따지던 나에게 초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50분 동안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혼자서 할 걸......’로 시작해 ‘역시 누구에게나 배울 게 있어!’라고 결론짓게 되는 일련의 흐름은 정말 몇 번을 반복해도 신기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한끼알바생을 ‘어떤 거대한 존재가 나를 위해 보내준 사람’이라 생각하며 만나고 있다.(66~67)     


한끼알바는 손님과 인연을 끊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제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거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을 때에 미래식당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내팽개쳐진 것처럼 느껴질 때의 마지막 안전망이고 싶다. 한끼알바는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미래식당에 가면 어떻게든 된다’는 생각으로 올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다.(80)     


미래식당의 시스템은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 자리의 성선설’이다. 인간은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항상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미래식당에 있는 동안만은’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착한 사람이 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스템을 설계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191)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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