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인생극장>
단 하나의 문장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몽땅 읽게 되는 경우가 있고, 단 하나의 글 때문에 한 사람의 작가를 영영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단서인데, 그 단서를 믿기로 하고, 그 믿음의 방향대로 앞으로의 시간을 내맡기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우연이라거나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이런 일이 김연수 작가를 읽을 때 종종 일어나고, 여행을 떠났을 때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김연수 작가가 쓴 여행기라니, 책장을 펼치는 순간 한동안 꼼짝없이 붙들릴 각오부터 해야 합니다. 자잘한 호기심, 다정한 마음, 추억과 기대와 허허실실한 유머 감각, 힘빼기의 기술을 갖춘 이 여행자가 들려주는 소곤소곤하고 노곤노곤한 이야기가 자꾸만 마음에 소슬하게 바람을 불어넣을 테니까요.
모든 것은 생이 다한 부모를 잘 보내드리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람의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연구하는 사회학자 아들은 정작 부모를 그렇게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은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는 저자의 회고를 듣고 읽으면, 독자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자꾸 방황하게 됩니다. 부모 세대가 울고 웃었던 영화들 속에서 젊은 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들을 등 떠민 바람을, 차마 꺼내놓지 못했을 이유들을, 묻어버린 기억들을, 아, 도대체 그런 삶이란 무엇이었을까,에 대답하기 위한 실낱같은 단서들을 찾고 있는 저자의 절절한 뒷모습이 겹쳐 보여서입니다. 부모를 보내는 한 아들의 진혼의 여정은, 지난 세대를 비로소 돌아보려는 독자들의 여정으로 넓어집니다.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