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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Jul 28. 2019

7월, 흔하디 흔하고 귀하디 귀한

허기가 찾아올 때 <입말한식>

회사 일에 치일 때, 인간 관계에 지칠 때, 숨어들고 싶을 때 요리책을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완성해가는 차곡차곡한 절차들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어떤 질서 안에 들어간 것처럼 차분해집니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한눈팔지 않고 딴짓하지 않고 공식을 밟으면 정답에 이를 수 있다는 안정감과 자신감에 잠시나마 젖게 됩니다. 


재료들의 연원을 헤아리는 요리책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재료들이 난 곳, 그곳의 토양과 기후와 문화, 재료들이 자란 시간까지 담고 있다면, 읽는 것만으로도 허기졌던 마음이 점점 불러 오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러니 이 책을, 지역마다 구구절절 내려오는 재료의 속뜻과 요리법을 또박또박 받아 적은 이 기록들이라니 아껴 읽을 수밖에 없겠지요. 

마늘과 고추, 쌀과 파… 한국인의 밥상에 흔하디흔한 재료들이건만 하나하나 잘 차려 자세히 보고, 그에 깃든 지역과 역사를 고운 말들로 풀어 펼쳐보니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마늘대장아찌를 마농지라 부른다.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는 바닷물 때문에 늘 입안이 헐거나 짠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되도록 밑반찬을 싱겁게 먹었다. 마농지는 간이 약간 싱거운 듯 삼삼하게 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세상 모든 것에 이유가 있고 맥락이 있겠구나, 싶습니다. 무심결에, 함부로 판단했던 것들 이면에 뭔가 사정이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 돌이켜보다 화들짝,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 음식에 자연스레 얽혀든 사정과 사연들에는 그 어떤 극적인 픽션보다 더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팔십 평생 김천을 벗어난 적 없는 토박이 김대진 농부의 마을에서는 아기에게 먹일 젖이 부족하면 하얀 호두살만 발라 미음을 쑤어 먹이곤 했는데, 생호두의 비릿한 향과 색이 엄마 젖과 비슷해 아기가 곧잘 먹어 살이 올랐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란 얼마나 약하고도 영리하며, 부모 같은 땅과 자연에 기대어 사는 존재들인지. 이쯤 되면, 하루하루가 신나고도 빛났던 어린 시절의 허기를 채워주었던 단순하고도 정직한 음식들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사람의 삶이란, 하며 마음이 순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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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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