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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Jul 24. 2019

7월, 생기로 웅성거리는 부엌을 찾아서

허기가 찾아올 때 <사람의 부엌>

식욕은 종종 (거창하게 말해서) 생의 허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양을 먹었는데도 속이 빈 것 같고, 기력이 딸리고, 탐스러운 음식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먹방 방송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면,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새로운 메뉴가 아니라 집밥, 혹은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을 함께 먹는다는 뜻의) ‘식구’들과 식탁에 둘러앉는 일상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것들, 기본적인 것들, 사소하게 느껴져서 번거로운 것들이 삶의 토대임을, 새삼스럽게 배웠던 곳이 저에게는 부엌이었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날카로워졌을 때, 싱싱한 재료들을 하나하나 다듬으면서, 손에 쥔 칼끝에 온몸을 집중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 위에서 끓는 국물 맛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것, 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살아있음의 지표가-1년 전 이맘때쯤 만든 매실청이라든가 지난 겨울에 담근 배추김치라든가, 시골 사는 친구가 보내준 사과라든가- 차곡차곡 쌓인 부엌들을 흠모해온 저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천국 같은 부엌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자는 한국은 물론 스페인과 이탈리아, 쿠바 등 전세계의 ‘냉장고 없는’ 부엌을 탐사합니다. 왜 하필 냉장고가 없어야 하냐면, 냉장고라는 요물이 식재료를 보관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니, 바꾸었다기보다 먹어치웠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각 지역에서 기후별로, 지형별로, 계절별로, 환경에 따라 다르게 축적되어 왔던 식재료 보관의 전통 기술들이 “냉장고에 넣는다”로 통일되었으니까요. 심지어 냉장고에 넣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식재료들까지도 일단 냉장고에 넣고 보는 생활이 전지구적 현상임을 발견한 저자는 어쩐지 슬픔을 느낍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우연히 혹은 유심히 각각의 식재료들이 어떤 상태에서 더 잘 지내는지 관찰하고 경험했다.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방법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맛을 찾아냈다. 이런 지식들 중 일부는 가까스로 우리에게 전해졌지만 냉장고라는 강력한 저장 공간의 발달로 수많은 지식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차가운 냇물에 감자를 얼리고, 온갖 채소를 햇볕에 말리고, 병조림과 과실주와 치즈가 가득한 이 부엌들의 풍경으로부터 되살리려 하는 것은 쉽고 편리한 기술의 이면에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인류의 지혜입니다. ‘인간’이라는 개체가 환경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독보적(혹은 독단적)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기 이전에, 환경을 알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이용하면서 만들어냈던 다양한 관계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생이란 결국 그런 이야기들, 곁에서 웅성거리는 순간들로 짜여지는 것이라면, 망설임 없이 냉장고 있는 부엌에 기댄 우리의 생이란 얼마나 허기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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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첨단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기술은 마치 인류의 진보와 위대함을 드러내는 유일한 증거인 양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역사를 써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신기술이 항상 더 지혜로운 최선의 선택일까?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신기술이 우리 일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일까? 그 새로움과 빠른 변화에 정신을 잃어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기술은 쉽고 빠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의 문제’는 그 신기술을 구매하는 순간 ‘그들의 문제’가 된다. 더 이상 문제의 대상에 대해 이해나 고민 따위는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해할 필요가 없어진 대상들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냉장고라는 기계에 음식 관리를 맡겼다. 우리의 앎은 ‘냉장고 문을 열면 식재료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멈추었다. 각각의 식재료마다 성격이 다르고 보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해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더 깊은 앎을 일구지 않는다. 그리고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우리는 속수무책이 된다.(52~54)     


툰타의 경우도 얼리면서 말린다는 기본 규칙은 같으나, 이번에는 언덕이 아니라 냇가로 나가야 한다. 추뇨 감자보다는 약간 더 큰 감자들을 얼음이 얼 정도의 차가운 냇물에 넣어 두고 하룻밤을 보내면 감자가 언다. 페르시는 이때부터 고생, 하지만 즐거운 고생이 시작된다며 씨익 웃는다. 아침이 되면 아내가 남편의 어깨를 잡고 언 감자 위를 걸어야 한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서로 노래를 부르며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면서 언 감자를 살짝살짝 밟아 준다. 감자에 남은 물기는 빠지고, 추운 아침 언 감자를 밟는 고단함은 잊힌다. 밟은 감자를 냇물에 다시 넣고 얼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날 아침 춤을 추러 다시 나간다. 이 과정을 일주일 반복하면 가볍고 오래가는 감자, 툰타가 완성된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특집 방송이 아니고서야 듣기 어려운 농사 타령이 이곳에서는 지난한 농사일에 여전히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152~153)     


매일매일 정신없이 일하고 바쁘게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누릴 수 있는 지식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애쓰는 삶도 있다는 것을 페페가 일깨워준 듯 하다. 페페가 ‘공동체를 위한 음식 저장 프로젝트’를 시작한 1996년은 쿠바에서는 특수 기간이라고 불리던 때다. 풍요롭던 쿠바 땅에 갑자기 닥친 문제로 인해 많은 쿠바인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야 했다. 구소련에서 공급받던 석유가 끊겨 개인적으로는 당장 자동차를 사용할 수 없거나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고, 국가적으로는 기본적인 산업 자체가 돌아가지 못했다. 모든 공장과 농장이 멈췄고, 돌아간다 한들 공산품이든 식재료든 운송이 어려웠다. 그때 직접 수확한 작물을 잘 보관하기만 해도 적어도 배고픔에 시달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페페는 아내 아날레나와 함께 음식 저장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176)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우연히 혹은 유심히 각각의 식재료들이 어떤 상태에서 더 잘 지내는지 관찰하고 경험했다. 옛사람들이 더 현명해서 자연을 이용했다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기에 식재료의 보관과 저장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방법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맛을 찾아냈다. 인과가 뚜렷한 과학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생선은 차가운 돌이나 대리석 선반 위에 올려놓았고 양배추나 상추 같은 잎채소들은 수확 후 물에 담가 놓았다. 이런 지식들 중 일부는 가까스로 우리에게 전해졌지만 냉장고라는 강력한 저장 공간의 발달로 수많은 지식들이 사라지고 있다. 선택지가 많은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보다 편리하고 빠른 방법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업화가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혹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삶에 동일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덕에 세계 각지에서 전통의 지혜를 발휘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지켜 온 지식과 지혜를 우리의 부엌으로 옮겨 오는 것은 이제 우리 몫이다.(370~371)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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