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jin Park Jul 22. 2019

7월, 당신의 집 혹은 꿈의 흔적

둥지가 필요할 때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인생을 바쳐 해볼 만한 일들 중 자신에게 맞는 집을 짓고 사는 것, 이야말로 부자가 되는 것이나 명예를 얻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기를, 계속 나아가기를, 일상을 과시하기를 강요받는 듯한 시대이지만, 정작 자신을, 자신의 중요한 추억과 버릴 수 없는 습관과 진짜 이루고 싶은 바람을 잘 알고, 공간으로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을 지을 만큼의 여건을 갖추게 되는 삶도 흔하지는 않죠. 


하지만, 집장사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집주인들이 욱여넣은 살림살이를 전전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곤 하는. 그러면서 집에 대한 개성 있는 감식안을 길러가기는커녕, 손해 보지 않을 만큼 충분히 대중적인 집 한 채나 마련하면 행운인 평범한 삶 속에도 저마다의 꿈이 있게 마련이고, 저는 가끔 친구들의 집에서 그런 꿈의 흔적을 발견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찡하더군요. 그러니까, 너는 저녁마다 저 이동식 플라스틱 욕조에 누워 하루의 고단을 풀겠구나, 너는 주말 오후면 해가 잠깐 머무는 저 창가에 앉아 떠나려는 빛을 붙들고 낭만적인 책을 읽겠구나, 너는 아침마다 이 복작대는 부엌의 곳곳을 뒤져가며 점심 도시락을 싸겠구나, 라고 짐작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조금 더 다르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라는 어린 시절의 허영이 어쩌면 조금 더 다정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라는 일상을 향한 갈망으로 바뀐 어느 시점 이후 내내 제가 부러워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낱낱이 더듬어보고, 꿈을 일일이 헤아려 본 시간과 깨달음을 녹여 직접 집을 세우고 그 안에서 뿌듯하고도 알뜰하게 자신만의 규모를 가꾸는 어른이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들처럼요.


이런 공간이 필요해요, 창은 어떻게 나 있었으면 좋겠고요, 마당의 길은 이웃과 통했으면 좋겠어요. 그 재료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몇 년 전 저는 어떤 사람이었냐면요... '집'과 집에 깃든 '꿈'을 매개로 이어지는 건축주와 건축가의 대화는 곧 삶에 대한 이야기라서, 집은 그야말로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합니다. 그 정성스럽고 나직한 표현들에 나도 모르게, 저의 삶을 비추어 봅니다. 손님들이 웅성웅성한 마루와 볕과 책으로 가득한 복도를 떠올리면, 그 집을 보지 못했어도, 그 집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를지 알 것만 같습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집을 지으며 집 짓는 기술이나 방법을 먼저 택하는 게 아니라 살기의 방식을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짓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먼저 묻는 게 건축이라고 여긴다. 이 ‘집’의 주인, 건축주가 그랬다. 그러니 건축가는 그런 건축주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이 ‘집’을 통해 건축가로서의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 ‘집’에 욕심이 많았고 건축가로서 ‘작을수록 나누자’는 ‘채나눔’의 주장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욕심 모두 건축가 아닌 건축주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20)


집 분위기는 이웃에 위세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비웃음과 풍자가 진보성을 가졌지만, 지금은 온통 세상에 비웃음 천지여서 너무 많은 비웃음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때로 우리의 꿈을 맥 풀리게 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시대가 비웃음의 과잉이라 보고, 작은 실천이라도 감싸 안는 따뜻한 손길이 구원의 동아줄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예 하지 말아라’입니다. 제 삶의 기치는 ‘대충 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각자 힘닿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서로 그것을 북돋아줄 때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합니다.(30)


장현집 서쪽 아래 파란 나무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쌍둥이 여자아이 둘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집으로 올 때 장현집 밭을 가로질러서 축대를 내려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장현집이 다 지어진 뒤에도 계속 장현집 밭을 가로질러 자기네 집으로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나무집 아주머니와 윗집 아주머니가 장현집터를 통해서 축대를 오르내리며 서로 오고가는데 장현집이 그 땅에 들어서고 나서도 이분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면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이런 점을 고려해서 담장을 만들어야 할 듯한데, 그럴 수가 있는지요? 제 생각에는 담장에 샛문을 내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253)

제가 장현집 그림을 본 감상을 정리합니다. 

첫째, 구석구석 얘기 나눌 자리가 참 많다고 여겼어요. 사람들이 집에 여럿 찾아와서 대거리하고 합숙할 때 곳곳에 앉아서 둘셋씩 얘기꽃을 활짝활짝 피우겠구나 싶었지요. 집 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해보면, 참 골목길이 많아요. 살면서 지루하지 않겠어요. 

둘째, 책을 놓는 자리가 멋지게 만들어졌어요. ‘책의 길’과 서재와 공중서가 이렇게 세 곳이 마련되었지요. ‘책의 길’이 팔처럼 뻗어서 마당을 감싸 안는 모습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지요. 

셋째, 바람길이 잘 난 집이어서 숨쉬기가 좋겠구나 싶어요. 제가 어릴 적에 축농증을 오래 앓아 공기의 질에 예민하거든요. 가끔 창이 열리지 않는 건축물을 보게 되는데, 기계로 공기순환을 해도 얼마나 쾌적할까 싶어 보기만 해도 답답해하지요. 장현집은 바람이 잘 통하게 홑집으로 설계되어 속이 시원합니다. 

넷째, 현대주택에서 진짜 마루가 나오다니, 놀랍네요. 이것은 맨 처음 만났을 때 부탁드린, 바깥에서 많이 지내는 생활양식을 제가 갖고 있다는 말을 잘 구현해주신 것이지요. 툇마루를 주문하고서도 그렇게 마루가 많이 있는 집이 나오리라는 생각은 못했죠.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했는데, 마루가 네 군데나 나와서 기쁩니다. (210)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7월, 생활의 궁리란 참 멋지지 않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