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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Dec 22. 2019

12월, 온몸으로 끌어안은 깊은 기억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덮으려는 이가 있고 파헤치려는 이가 있습니다. 외면하려는 이가 있고 마주보려는 이가 있죠. 그 선택이 각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어떤 중대한 일은, 사회의 거의 모두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 이가 많은가, 가 바로 그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겠죠. 


세월호 참사 때 그 실체에 가장 깊이 다가간 이는 누구일까요. 배가 황망히 가라앉은 캄캄한 심해를 온몸으로 더듬었던 잠수사들을 기억하시나요. ‘온몸으로’ 라는 표현은 은유가 아닙니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은 그들이 실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꽉, 산 사람끼리 껴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힘을 주어 끌어안고 올라오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합니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잠수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삶을 영원히 바꿔버렸던 그 순간들을 읽으며, 그 비극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안다고 떠들었던 것이, 아직도 어쩌면 영영 모를 것이 무엇인가, 먹먹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가에 살았고, 살고 있으며, 너무 오랫동안 덮으려고 외면하려고 하는 이들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아 왔지만, 그럼에도 파헤치고 마주하려는 이들이 있었고, 그 깊고 깊은 기억들 덕분에 편리한 선택을 멈추었고, 분명히 변해 왔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 페이지, 읽어보세요!


“선내에서 실종자를 발견하면 수습은 어떤 식으로 합니까?”

“바지선을 떠날 때까지 명심할 사실을 가르쳐 주겠다. 잘 들어! 여러분이 도착한 오늘까지,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이승을 떠난 실종자가 잠수사를 붙잡거나 안을 수 없으니, 이 포옹을 시작하는 것도 여러분이요 유지하는 것도 여러분이며 무사히 마치는 것도 여러분이다. 산 사람끼리 껴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힘을 줘야 해. 게다가 멈춰 서서 편히 안는 게 아니라, 안은 채 헤엄쳐 좁은 선내를 빠져나와야 한다. 끝까지 포옹을 풀어선 안 되는 건 기본이고, 이동중에 실종자의 몸이 장애물에 부딪쳐 긁히거나 찢긴다면 여러분은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할 거다. 포옹하는 장소는 얕게는 20미터 깊게는 40미터가 넘는 심해다. 공기통 메고 들어가서 단둘이 오붓하게 즐기는 관광명소가 아니라, 수평 가이드라인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90도로 기운 침몰선의 집기들이 언제 붕괴될지도 모르는 수중이다. 포옹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공간, 그곳으로 가서 여러분은 사망한 실종자를 안고 나오는 거지.”(33~34)


태풍 전야라고나 할까요. 이제 곧 몸과 맘을 바쳐 몰두하기 직전, 제 속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판단을 내리진 않습니다. 다만 이곳에까지 이른 제 마음을, 긴 항해 끝에 정박한 낯선 항구에서 거울에 비친 몰골을 확인하듯, 살피는 겁니다. 제가 산업 잠수사가 아니라면 맹골수도에 있을 까닭이 없겠지요. 변하지 않는 생존자 숫자를 각종 뉴스에서 매일매일 확인하며 분통이나 터뜨렸을 겁니다. 하잠색 즉 잠수사를 위해 내린 가이드라인 옆에 앉아 밤바다를 쳐다봤습니다. 바로 이 아래에 침몰한 여객선이 있고 그 안에 실종자들이 있는 겁니다. 그들을 선내에서 만나면 과연 어떨까요(49)


종후, 윤종후였습니다. 

그 배에서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나온 남학생은 윤종후뿐이었습니다. 평상복으로 자유롭게 다녀도 되는데, 가슴에 이름표를 단 건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나중에 종후 부모님께 들으니, 종후가 어느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이 윤종후라는 걸 알리기 위해, 가방에 있던 이름표를 꺼내 가슴에 달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종후의 뺨에 제 오른손을 가만히 댔습니다. 그리고 부탁했습니다.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선내로 진입한 잠수사들이 실종자를 찾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머물든 입술을 통해 나오든, 실종자를 찾은 후엔 그 실종자와 함께 어둠을 뚫고 좁은 배 안을 빠져 나와야 하니까요. 잠수사들은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실종자가 돕지 않는다면, 결코 그곳에서 모시고 나올 수 없다고.(80~81)


공책을 넘겨 아직 한 글자도 적히지 않은 빈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앞에 적은 이들은 모두 종후가 살아 있을 때 함께 추억을 쌓았지만, 저는 목숨이 다한 뒤 그것도 차가운 바닷속에서 종후를 만난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죽은 사람을 향해 무엇인가를 쓴 적이 없습니다. 멍하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페이지만 쳐다보는데,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번졌습니다. 고개를 들고 손등으로 눈을 비볐습니다. 엄지로 눈물 자국을 누른 뒤 그 위에 적었습니다. 

미안하다 모든 게 너무 늦어서(269)


《거짓말이다》 1부 첫머리에 소제목으로 삼은 질문이 ‘나는 왜 갔을까’이다. 이자카야에서 모자를 선물받을 때까지도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정확히 몰랐다. 그를 영원히 보내고 돌아와 탈고한 24일 새벽,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아는 인간이기 때문에 갔던 것이라고, 함께 더 깊이 내려가기 위해, 그 과정에서 거짓과 참을 낱낱이 찾아내기 위해, 그는 맹골수도로 갔고, 광화문 광장과 동거차도와 단원고 교실과 또 내게로 왔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너무 많은 이와 포옹하는 바람에 아무도 모르는 깊이까지 내려간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깊은 인간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중첩된 어둠 속에서 침묵하는 법이라고. 그러나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만지며 냄새 맡으며 귀 기울이고 있다고. 그것이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는 완성이라고.(386~387)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11월부터 멈포드의 서재는 동네 서점 '니은서점'@book_shop_nieun과 함께 엽니다. 3개월간 진행하는 시즌 1의 주제는 '타인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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