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울증에 걸렸다
두 번째 회사 : 광고회사 B사(4)
집에 와서도 계속 훌쩍이면서 작업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조금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벌써 아침이었다. 두 눈이 팅팅 부어오른 채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컨펌을 받기 위해 바 사수님 메신저로 작업물을 공유했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사수님은 내가 작업했던 원본 파일을 요구했다. 전달하자 그는 파일을 열어 많은 것을 고쳤고 광고주한테 보냈다. 그 결과물은 내 것이라기보다 그의 것이었다.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 노력은 아무런 의미를 낳지 못했다. 또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전날 가졌던 예상과 한 치 다르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자 되레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신경이 과민해졌다.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 ‘진짜일까?’라고 의심을 품었다. 아무런 잘못을 안 저지르고 안온한 하루를 보낼 때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차피 내일이면 또 실수하게 될 거야.’라며 미리 부정적인 사고부터 가졌다.
그런 태도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팀에 녹아들기보다는 겉돌기만 하였다. 매일매일 긴장감에 사로잡혀 빳빳하게 구는 막내 인턴을 누가 편안해하겠는가. 나도 내 모습이 보기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치솟는 긴장감만큼이나 일의 숙련도도 비례해 상승했으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온종일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지니 기존에 쉽게 하던 업무도 능숙히 처리하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4팀에서는 언제 퇴출당하는 걸까?’를 늘 생각했다. 2팀에 있을 때와 비교해, 아이디어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까닭이었다.
B사에 출근할 때마다, 4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이상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옥상 너머를 하릴없이 쳐다보게 되었다. 길을 걷다가 차도 위를 빤히 보게 되었다. 매섭게 달리는 차를 보며 그릇된 소망을 품기 시작했다. 저것이 방향을 틀어 인도로 돌진하기를, 그리고 내가 무자비하게 다치기를. 교통사고를 당한 나는 입원을 하게 될 것이다. B사를 불가항력적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의 비난도, 조롱도 없는 평화로운 퇴사였다. 상상만으로 나는 자유를 느꼈다.
이게 미쳐가는 과정 중 하나란 걸 아무리 둔한 나여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대로면 정말 일을 치를 것 같은 기분에 우울증세가 더 깊어지기 전 동네 근처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검색해보았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은 사실 이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이가 어렸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었고, 고로 엄마가 나 대신에 병원을 알아봐 줬기에 진료 예약이 이토록 어렵다는 걸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병원에 전화해봐도 예약이 꽉 차 있어 당장 진료를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특히나 주말 방문은 평균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했다.
"다음 주 목요일 저녁이면 가능한데 예약하실래요?”
문의 전화를 여럿 돌린 병원들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간호사에 물음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되었다고 답했다. 평일 일정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이제 나는 광고대행사의 실태를 아는 인턴이었다.
광고대행사란 무릇 언제 어떻게 일정이 변동되는지 알 수 없는 곳이고 특히 말단 중 말단인 인턴이 개인의 약속을 감히 잡으면 안 되는 곳이다. 나는 다음 주 목요일에 야근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공존의 경우에 놓인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와도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어쨌든 현 상황에서 평일 약속을 잡을 수는 없어 주말에 최대한 빠르게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을 계속 찾아보았다.
그 결과, 찾았다. 옆 동네 상가 안에 있는 병원이었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멀지 않았다. 물어보니 예약을 할 필요도, 기다릴 필요도 없다고도 했다. 더군다나 초진 비용이 다른 병원과는 확연히 다르게 저렴했다. 그 이유는 심리 검사를 하지 않아서였다. 돈을 아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의아함이 들었다.
초진인데 검사를 왜 안 해? 그럼 어떻게 상담을 본다는 거지?
그 의문은 주말에 해당 병원을 방문하면서 해소할 수 있었다. 이곳은 상담을 안 보는 곳이었다. 아니, 상담을 보기는 했다. 그걸 본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의사가 진료실 문을 열어두고 “무슨 일로 왔어요?”라고 묻는 곳이었고, 진료실 코앞에 대기 의지가 비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가뜩이나 병원 내부가 협소해 소리가 다 울리는데 대기실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리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꺼내겠는가. 모두의 앞에서 내 못남을 드러내는 일은 또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왔노라 짤막이 답했고 의사는 더 묻지 않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병원에 온 지 10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 상담이 뭐가 중요한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약이 중요한 거지.
어딘가 찜찜하긴 해도 나는 약봉지를 소중히 다루며 가방 안에 넣었다. 이것만 잘 먹으면 나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더는 멍하게 차도를 볼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원하는 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는다. 약을 꾸준히 복용했음에도 나아지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얻은 유일한 안식은 내가 이 약을 가지고 있단 사실 그 자체였다.
나는 주머니에 신경 안정제, 위장약 따위가 들어 있는 약봉지를 노상 넣어두고 다녔다. 여차할 때, 그리고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일 때 즉각 봉지를 찢어 입안에 털어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리 행동하였다.
정해진 1일 치 복용량을 훌쩍 넘기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날은 신경안정제 1알을 더 추가해서 먹었고, 또 어느 날은 비타민 영양제라도 챙겨 먹듯 습관적으로 여러 알을 꺼내 빈번하게 삼켰다. 이처럼 기존 복용량의 2배 이상을 먹은 날은 대체로 회의가 많은 날이었다. 나는 이제 B사 사무실에 앉아 있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렸는데, 특히 회의실에 있을 때는 그 증세가 한층 더 심각해졌다. 표정을 멀쩡하게 꾸밀 수 없었고 행동도 정상인처럼 가장할 수 없었다. 삐걱거리는 내 모습은 흡사 고장 난 로봇과도 같았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회의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건 꼼꼼한 회의 준비도, 잘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도 아닌, 오로지 내 주머니 속에 든 알약뿐이었다. 실제로 효과를 본 건지 안 본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완화될 가능성이 이 조그마한 알약 속에 들어 있다는 건 명백하니 위로가 되었다. 맹목적으로 그 가능성을 믿으려 들었다.
그렇게 신경안정제를 부적처럼 여기며,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한 알씩 삼켰다. 하루에 회의가 3번 있는 날엔 3번 연달아 복용하기도 했다. 아주 순 제멋대로인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멋대로 구는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의사는 약을 커피나 술과 함께 복용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전부 어겼다.
커피는 어쩔 수 없었다. 약의 성분과 연이은 야근으로 인해 졸려 죽을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신경 안정제만큼이나 카페인 섭취도 중요했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B사의 상사들은 회식을 무척 좋아했으며 술 잘 마시는 인턴을 예뻐했다. 나는 뭐든 좋으니 미운털이 덜 박히고 싶었다. 그래서 상사가 주는 술을 넙죽 받아 마셨다. 구태여 술을 좋아한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회식을 즐기는 척했다.
정 음주를 피할 수 없다면 그날은 약 복용을 건너뛰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회식이 있는 날에도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니 술과 약을 함께 먹은 일 또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해본다. 비록 귀가하고 나서 내내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할지라도 말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사정은 의사한테 밝히지 않았다. 우선 쪽팔렸다. 그다음 이유로는 혼이 나고 싶지 않았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까지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 재방문한 날, 잘 복용하고 있냐는 의사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치 양을 단기간 내에 다 처먹었단 소리는 하지 않았다. 약이 없는 나머지 날에는 스무 살 때 처방받고 남았던 정신과 약으로 대신했다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물론 스무 살 때의 약이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음을 알리지도 않았다.
나는 복용량을 더 늘려달라는 부탁만 건넸다. 의사는 왜냐고 물었다. 나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게다가 회사 생활이 바빠 다음 주 주말에는 못 올 것 같다고 답했다. 진료를 볼 때마다 내가 하도 과로, 과로 노래를 불러서 내 말에 신빙성을 느낀 건지, 아니면 원체 이 병원은 상담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의사는 더 캐묻지 않고 통 크게 지난번보다 많은 양의 약을 처방해주었다.
이번 진료도 10분 안에 끝이 났다. 난 약봉지를 챙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양이 두둑해진 만큼 마음도 넉넉해졌다. 조금 기분이 풀린 채로 버스 창 너머를 구경했다. 날씨는 쾌청했고 나뭇잎의 색은 싱그러웠다. 다가오는 여름을 한가로이 감상했다. 그러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에 시선이 갔다. 타이어 무늬가 보이지도 않게 맹렬히 돌아가는 바퀴.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프긴 하겠지?
불현듯 드는 사고에 화들짝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다. 가방에 있는 약봉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B사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잊으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