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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09. 2022

6. 지하철에서 울고 싶진 않았지만

두 번째 회사 : 광고회사 B사(3)

 바 사수님한테 책망 받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데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모자란 놈인지 똑똑히 알리기까지 하여 더욱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특히 4팀 자리 근처에는 2팀의 자리가 있었고, 불운하게도 2팀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2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의식되자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가 없었다. 바 사수님한테 혼나는 와중 나는 2팀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그들의 머릿속을 함부로 짐작해보았다.


 ‘쟤 아직도 저러는구나?’, ‘꼴통 인턴 여전하네.’, ‘우리 팀 나가서 다행이다.’


 아마 그런 뉘앙스의 생각들이 떠올라 있지 않을까.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죽고 싶어졌다. 그냥 죽고 싶었다. 2팀을 나갈 때 가졌던 생각을 다시금 가져보았다.


 나는 재차 고개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몇 번째일지 모르는 사과였다. 바 사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퇴근해. 내일 오전에 마저 작업 끝내자.”


 가방을 챙긴 바 사수님은 먼저 사무실을 벗어났다. 나는 한참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노란 햇빛이 거리를 물드는 풍경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는 노을이 져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은 퇴근길은 꽤 오랜만이었다. 4팀에 오고 난 뒤로 계속 야근을 했으니 그럴 법했다.


만석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건대 입구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빈 손잡이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붙잡고서 생각에 잠겼다.


내일 오전에 작업을 끝내자고, 바 사수님은 말했지만 내 작업 속도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오늘 집 가서 마저 작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최대한 저녁은 빠르게 해결하자. 집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오는 거야. 그리고 그걸 먹으면서 사무실에서 했던 작업들을 가장 먼저 고치고. 그러고 나서 나머지 3개를 작업하고 아, 그 전에 레퍼런스를 찾아봐야지. 그리고 그다음에... 그래서....


 그래서? 뭐? 대체 무엇이 바뀌는 거지? 야근을 자발적으로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야근을 해왔다. 밤을 새웠고 광고물 제작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다. 2팀에 있을 때와 대체 무엇이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날, 성장했다고 느낀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대단한 광고인이 되겠다는 포부는 진즉에 버렸다. 그저 방해가 안 되는 인턴이라도 되고 싶다는, 일차원적인 소망만을 안고 B사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보냈다. 그렇게 보낸 지 벌써 3개월 다 되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멍청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게 원점이었다. 어차피 오늘 집에 가서 밤새서 작업을 한들 내일 그 노력이 빛을 발할 일이 있을까. 아니, 없다. 또 다른 일로 혼이 날 게 분명했다.


 차라리 바 사수님이 아닌 나 CD님에게 한 소리 들었더라면 덜 비참했을까? 나 CD님은 원래 깐깐하고 무섭기로 유명한 사람이니 말이다. 그랬다면 나는 내 실수를 지적하는 나 CD님을 그저 꼰대라고 치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이 지금보다는 덜 괴로웠을 것이다.


 아니다. 아니야! 이런 합리화가, 이런 가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나 CD님의 눈 밖에도 나갈 텐데. 2팀에서처럼 다시 한 번 아웃당할 것이다. 그럴 게 뻔했다.


바 사수님 말처럼 나 같은 인턴이 처음이라면, 나는 더 이상 B사에 있어서는 안됐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괴로운 건 나만이 아니었다. 2팀의 가 CD님도, 4팀의 바 사수님도 괴로울 따름이며, 그리고 앞으로 B사의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간의 고생이 단번에 의미를 잃는 순간, 나는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문득 볼 위로 흘러내리는 존재를 깨달았다. 의식도 못 한 새 나는 울고 있었다. 간간이 눈물을 훔치며 지하철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상황을 넘기려 했지만 눈물의 양은 눈치도 없이 점점 많아졌다. 턱 끝으로 맺힌 것들이 자꾸 바닥으로 떨구어지자 구석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창을 향해 몸을 돌리고 허리와 고개를 푹 숙였다. 양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단단히 감쌌다. 압박하듯 눈가를 누른 손 틈 사이로 눈물이 삐져 나왔다. 울음을 삼키고자 했지만 흐느낌이 바깥으로 헤프게 새어 나갔다.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등 뒤로 그들의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지하철 칸에 B사의 직원이 타고 있고,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도저히 멈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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