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재직 중, 타사 면접을 봤다
두 번째 회사 : 광고회사 B사(5)
벌써 6월 중순이 되었다. 그리고 B사 근무 기간이 4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생리를 아예 안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B사에 입사한 첫 달에는 했지만, 그다음 달부터는 완전히 멈춘 것이다. 물론 그 사실 자체는 알았다. 알았지만 언젠가는 하겠거니 하며 내버려 두었다. 솔직히 생리통이 심한 편이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바빠 죽겠는데 배까지 아프기는 싫었다. 그런데 여름이 다 되어가도록 하지 않으니 이제야 의식이 됐다. 때늦은 걱정이 몰려왔다.
생리가 중단될 정도니 몸에 이상이 생긴 건 분명했다. 하긴 그렇게나 야근하고 혼이 나고 우울증 걸리고. 온갖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를 다 받아왔는데 건강하다면 그것도 좀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인사팀에게 문의 메일을 넣었다.
[인턴은 언제 어떻게 휴가를 쓸 수 있나요?]
그리고 인턴 동기들 단체 메신저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휴가 쓰는 방법 물어봤어. 답장 오면 너희한테도 내용 공유할게.]
인턴 동기들이 나보고 용감하다고 했다. 1년 미만 단기 근로자여도 통상근로자라면 연차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1개월 만근 시 하루 휴가일이 발생하는 식이다. 포털에 검색만 해도 주르륵 뜨는 상식이었다. 법적으로도 보장된 이 조항을 인사팀에게 물은 것뿐인데 동기들은 용감하다는 수식어를 감히 내게 붙여주고 있었다. 그런 반응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답장 메일은 바로 왔다. 본인 소속 팀 CD한테 먼저 허락을 구하라고 적혀 있었다.
3개월을 만근했으니 내게는 휴가일 3일이 주어진 셈이었다. 나는 그 뒤로 여러 준비를 했고 한 곳에서 결과가 나오자 4팀의 나 CD님에게 다가갔다. 꾸벅 인사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CD님. 다음 주 수요일에 휴가를 써도 괜찮을까요?”
어느 날 점심, 나는 대뜸 인턴에게도 휴가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언젠가 나도 하루 정도 쉬고 싶다고 은근히 어필했다. 그 사전 공작 덕분일까. 나 CD님은 처음처럼 인턴에게도 휴가가 있느냐고 황당해 하지 않았다. 그는 그래라, 즉답했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못마땅함과 의아함은 감추지 못했다.
“휴가는 왜 쓰는데?”
이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거짓말을 했다. ‘제가 요즘 많이 아파요. B사에 오고 나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에요! 아니, 그보다도 저 계속 야근했잖아요? 휴가 정도는 그냥 써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솔직하게 반응할 수는 없었다.
내 모호한 답변에 나 CD님은 어이없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무어라 더 말을 보태기 전, 재차 고개를 꾸벅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겨우 휴가를 내서 간 곳은 상담까지 해주는 더 좋은 정신건강의학과 병원도, 현재 몸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산부인과 병원도 아니었다. 어느 중견기업의 면접장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것만으로도 벅찬데 몸에 다른 이상까지 생기니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이직을 결심한 것이다. 더는 B사에 멀쩡한 심신으로 다닐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회의적으로 변한 것처럼 퇴근 후의 일상도 덩달아 번했다. 예전에는 곧장 침대 위로 쓰러져 모자란 잠을 보충하곤 했는데 요새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한 중견기업에서 디자이너가 자리가 나왔고, 지원했고, 서류 전형에 붙었고, 면접에 불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면접장에 왔다. 해당 기업 디자이너 직군은 다른 직군과 다르게 면접 이후 따로 실기 시험을 치른다는 안내를 받았다. 하루 안에 다 소화하기엔 빡빡한 일정이었으나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운 나한테 있어 오히려 좋았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막상 중견기업에 와보니 이야기가 달라져 있었다. 전형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다. 채용 담당자가 대기실에 와서는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오늘은 실기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날을 다시 잡아 실기 전형을 진행하겠다고, 2~3일 내로 빠르게 일정을 잡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담당자는 당당한 투로 뒷말을 붙였지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2~3일 뒤라니? 그 단기간 내에 또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이번 휴가도 눈치를 살살 보다가 일주일 전부터 이야기 꺼내서 겨우 얻어낸 거였는데? 내일이나 모레, CD님한테 가서 또 휴가 가도 되냐고 묻다가는 그때는 '그래라'가 아니라 제정신이냐는 불호령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럼 나는 또 혼나고, 인턴 동기들은 또 내게 용감하다는 말을 보내겠지. 어째 불길한 시나리오가 착착 그려졌다.
패닉에 빠진 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얼마 안 가 호명되었고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원자들이 전부 자리에 착석한 뒤, 면접관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 중 예상했던 질문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물음에 나는 전부 횡설수설 답했다.
이 면접을 잘 본다 한들 다음 전형에는 어차피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정신이 나가 있었다. 똑바로 정신 차리고 답하자고, 뒤늦게 되뇌어보며 결자해지하려 들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면접관은 면접 초반부터 어리바리 떨며 멍청한 소리만 지껄이던 내게 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까부터 또박또박 말 잘하는 지원자에게만 시선을 주었다. 중요한 질문도 그에게만 던졌다. 구태여 채용 담당자에게 결과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탈락이다.
오후 4시쯤 돼서 중견기업 면접장을 나갔다.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다. 이렇게 일찍 끝낼 거면 그냥 지금 실기 보면 되는 거 아니야? 황당하게 빌딩을 올려보았다. 눈살을 와락 찌푸리며 노려보다가 도중에 그만두었다. 쭈그린 이맛살이 아픈 데다가 어차피 탈락이 결정 난 지금 상황에서 모든 가정은 무의미했으니까. 실기 전형에 대한 미련을 겨우내 떨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집에 도착하니 5시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평일 이렇게 이른 오후에 집에 있는 경우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하루 휴가를 쓰니 이건 좋네.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구두를 벗었다. 정장을 입은 채로 털썩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이미 떠나간 버스인데도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나는 자꾸만 좀 전의 면접을 복기했다.
그 질문에는 졸업 작품 이야기 꺼내면 됐는데. 아, 그 질문에도....
곱씹을수록 아쉬웠다. 그리고 짜증이 솟구쳤다. 머리 위로 열기가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취준생은 뭐, 맨날 시간이 비워져 있어야 하나? 원래 일정대로 진행하지 못하면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아니야? 면접비도 안 줬으면서 유세야. 2~3일 간격으로 전형을 치르는 곳인 줄 알았다면 서류에 지원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중견기업의 엉성한 일정 관리와 무책임한 모습에 비난을 쏟아 부었다. 나에 대한 비난도 잊지 않고 했다.
꾀병이라도 부려서 회사를 빠질 생각을 해야지. 곧이곧대로 휴가를 내려고 해?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고작 실기 시험, 다른 날에 본다고 멘탈이 나가? 그러니까 B사에서 그 모양, 그 꼴로 지내는 거 아니냐고. 제발 좀 똑똑하게 인생 살자. 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한참을 씩씩거렸다. 거추장스러운 정장 재킷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좁은 방 안을 빙빙 맴돌았다. 평소 욕도 잘 안 하면서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는 머리통은 각종 창의적이고도 신랄한 욕설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내게 쓰기를 종용했다.
나는 나 자신과 중견기업을 번갈아가며 욕했다. 그러다 무언가 정해진 결말처럼, 당연하게 당면해야 할 순간처럼 모든 화살을 B사에 전부 돌렸다. 그리고 맹렬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잘났어?”
도대체 B사가 뭘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세계 최고의 광고 회사라도 되나? 그렇지 않지만, 설령 그렇다 쳐도 꼴 보기 싫었다.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는 그 꼴이. 야근 수당은 한 번도 챙겨주지 않는 주제에 휴가 하루 쓰는 것도 참 눈치 보게 하고 있었다. 추가로 근무한 시간까지 다 따지면 최저 시급도 못 받고 일하는 건데 말이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나도 내 안에 있는지 몰랐던 분노가 별안간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폭발하니 B사에 대한 불만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치미는 화에 근처에 있는 방석과 베개를 집어 던졌다. 그런데도 분이 잘 풀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나는 광고에 무지했다. 광고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가는, 그리고 똑똑한 B사의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뭐. 뭐 어쩌라고?
그런 나를 뽑은 건 결국 B사의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B사에 막 들어온 게 아니었다. 재벌 3세이거나 든든한 뒷배가 있거나 해서 회사에 쳐들어온 낙하산이 아니란 말이다. 차라리 그랬다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입사 전, 그들이 요구하는 시험에 성실히 응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 밑천을 드러냈다.
내가 광고 전공도, 관련 동아리 소속도 아니라는 건 이력서만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류 합격시킨 건 그들이었다. 내가 제출한 포트폴리오를 보더라도 알 터였다. 광고 작업물보다는 창작물 위주로 제작해왔다는 사실을. 난 광고 경험이 짧은 걸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B사로 부른 건 그들이었다.
서류 전형 다음에 치렀던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디어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분명 그들은 알 수밖에 없었으리라. 숙련된 광고인의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지극히 일반인다운, 그래서 어색하고 날 것 그대로인 아이디어임을 광고 업계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그들이 과연 못 알아차렸을까? 바보도 아닌데 그럴 리 없다. 무엇보다 면접장에서 나는 다 말했다. 나 원래 광고 배우지 않았다고. 그냥 좋은 광고 만들고 싶어서 온 것뿐이라고!
나를 검증할 수 있는 단계는 수없이 많았고, 그건 다시 말해 나를 걸러낼 수 있는 순간도 수없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난 거짓말하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뽑은 건 끝내 저들이니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저들이 내게 잘못을 저질렀다. 이렇게나 사람 미치게 만드는 회사라는 걸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가. 언론에 많이들 출연하셨던데, 왜 그런 공공연한 장소에서 고지하지 않았냐는 말이다.
‘저희는 잘 못 하는 인턴은 무시합니다. 여차하면 팀에서 내보낼 거예요. 그러니 실력 좋은 인턴만 오십시오.’
이 몇 마디만 해줬더라면 난 내 분수를 깨닫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B사는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인턴을 구했을 테고, 나는 H 대학원에 진학해 모자란 공부를 더 했을 것이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다.
애당초 B사의 사람들은 인턴에게 왜 이리 바라는 게 많단 말인가. 인턴에게는 책임감 정도만 요구하면 될 일 아닌가. 왜 자꾸 그 이상을 바라며 야근을 강제하는 거지? 정규직 전환형도 아닌, 6개월짜리 유통기한을 지닐 뿐인 체험형 인턴인데 참 알뜰하게도 사용하신다.
문득 B사의 모습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이어도 괜찮아.’, ‘모든 사람은 빛나니까.’, ‘언제나 당신을 응원합니다.’ 따위의 아름다운 카피를 쓸 거면 부디 행동도 그리 해줬으면 했다. 처음인 사람은 잠시 기다려줘도 되지 않는가. 무지한 사람은 좀 가르쳐줘도 되는 게 아닌가. 왜 이렇게 사람 숨 막히게끔 한계선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다.
실은 이해하고 있었다. 완벽히는 아니어도 어렴풋이나마 광고업의 특성을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납득하는 중이었다.
광고대행사는 몹시도 치열한 곳이다. 광고주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야만 생명이 연장되는 집단이다. 명망 있는 광고 회사일지라도 새로운 광고를 계속해서 만들지 못하면 폐업 수순을 밟는다. 광고대행사라면 꾸준히 참가해야 하는 경쟁 PT에도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결국 선정되는 대행사는 단 한 곳뿐. 떨어진 나머지 회사는 투자한 시간은 물론이요, 돈을 돌려받을 길이 요원하다. 많은 광고주가 리젝비(*reject fee, 입찰탈락보상금)를 따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팀을 나가게 된 순간부터 이해했던 것 같다. 여긴 그런 업계구나. 내 퇴출은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라면서. 그렇지만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에게 분노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었다.
화를 내리 내니 힘이 쭉 빠졌다. 가슴팍의 들썩임이 잦아질 즈음 근처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앞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맺힌 땀을 털어냈다. 조금 개운해진 머리로 이번에는 의미 없는 욕설이 아닌 생산적인 사고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퇴사하든가 아니면 버티든가.
B사를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해보니까 알겠다. 중도 퇴사하고 지원서를 넣는 게 더 효율이 높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버티는 방법이 있었다. 이제 남은 근무 기간은 2개월 2주. 계약 기간의 절반 이상을 건너온 셈이었다. 짧지는 않지만 길지도 않았다. 게다가 중도 퇴사한다면 B사의 인턴 경력은 이력서에 쓸 수가 없었다. 함부로 적다가는 인턴 경력이 왜 이리 짧냐는, 곤란한 질문이 면접장에서 날라올 것이다. 이에 ‘힘들어서 중간에 나가버렸어요!’라고 해맑게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점을 생각하니 중도 퇴사는 아쉬운 결정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버텨야겠단 결론을 쉽사리 내릴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인턴 생활이 지옥 같았으니까.
답이 안 나오는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민하는 동안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더는 넣지 않았다. 구직 사이트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B사 업무에만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이 주일이 흘러갔다. 어느덧 6월 말이었고, 며칠 후면 7월이었다. 곧 다른 팀으로 옮겨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이제 B사 계약 기간은 대략 2개월 남았다. 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 2개월을 버티기로.
솔직한 심정으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싶었다. 사직서를 냉큼 제출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담은 짐을 들고서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누구도 나를 할퀴지 않고, 탓하지 않는 그 안락한 보금자리로. 습관적으로 먹는 우울증약도 다 끊어버리고 차에 치이고 싶단 상상도 다 그만둬버리고.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상일까.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앞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는 긴 시간 동안 괴로워하리라는 걸. 6개월도 못 버틴 낙오자라고 자신을 비난하려 들겠지. 그때는 모든 화살을 B사가 아닌 내게 오롯이 돌릴 것이다. 나는 본디 나 자신을 아끼기보다 상처 주는 일에 더 특화된 사람이므로.
그래서 자기 자신을 깎아내릴 여지는 애초에 남기지 않기로 했다. 고작 6개월짜리 인턴 생활로 인해 패배감으로 얼룩진 일상을 보내기에는 좀 억울하지 않은가.
또한, 오기도 새로이 생겼다. 2주간 생각을 많이 했다. 광고란 무엇인지, 어떤 아이디어가 대체 좋은 건지, 왜 나는 좋은 광고인이 될 수 없는 건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직 다 내리지 못했으나 영영 못 낼 것도 없지 않나 싶었다. 광고, 그까짓게 뭐라고. 이런 심정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광고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란 이야기다. 나도 사람이고, 나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니 버티기로 했다. 끝까지 버텨내 그 광고란 게 대체 뭔지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