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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08. 2022

4. 나는야 미운 인턴 새끼

두 번째 회사 : 광고회사 B사(1)

 광고대행사, B사의 인턴 제도는 조금 특이했다. 계약 기간인 6개월 동안 한 팀에만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팀에 소속되는 형식이었다. 그런 제도가 있는 건 인턴에게 최대한 다양한 업무 경험을 주기 위함이라고, 입사 날 인사팀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실상은 B사의 많은 팀에서 인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조금이라도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도록 인턴이 돌아다니며 근무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손이 부족한 팀이 네 팀 있다면, 인턴은 그 네 팀에 차례대로 투입되는 식이었다.


 나는 총 세 개의 팀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각 팀에서 2개월씩 일하면 된다고 인사팀이 사전에 말해주었다. 2개월씩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다. 내가 업무에 익숙해지고 내 무언가를 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다소 짧았다. 그래서 인사팀에게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각오를 다졌다. 빠른 기간 내에 역량을 끌어내 선보이겠다고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제작 1팀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싱겁게 바로 다른 팀인 2팀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1팀의 일정이 급격히 여유로워져 내가 할 일도, 도울 일도 딱히 없었던 까닭이다. 이런 팀 이동이 당혹스럽긴 해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도 할 일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보다는 일하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그렇게 소속을 옮기게 된 제작 2팀에는 가 CD님(*광고 제작팀의 팀장 호칭), 카피라이터님 n분, 그리고 아트디렉터님 n분, 이렇게 총 세 직무의 구성원들이 있었다. (인원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제작팀도 대체로 이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아주 간단하게 직무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CD는 제작팀의 총 책임자, 카피라이터는 광고 문구 담당자, 아트디렉터는 광고 시각 담당자라고 할 수 있다.


때마침 2팀은 얼마 전 큰 프로젝트를 수주했기에 일정이 급격히 바빠진 상황이었다. 1팀과는 다르게 이것저것 잡일을 할 인턴이 필요했다.


 2팀 사람들과 처음 만나 인사하던 날을 기억한다. 가 CD님은 첫 대면에서 대뜸 내게 귀엽다는 칭찬을 건넸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애꿎은 뒷머리만 쓰다듬었다. 생전 처음 들어본 소리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어색해 죽으려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을 또 걸었다.


 “너 낯 좀 가리는구나?”


 의외롭다는 듯 물었지만 별로 탓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나는 내 부족한 사교성이 전부 까발려진 듯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허둥대며 대꾸했다.


 “아아, 네. 제가 좀 그래요....”


 가 CD님은 필히 벌게졌을 게 뻔한 내 얼굴을 계속 응시하며 어깨를 툭툭 쳤다.


 “편하게 대해도 돼. 나 안 무서운 사람이야.”


 그 말에 나는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 CD님의 말대로 그는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말투는 나긋나긋했고 웃음은 많았다. 그는 대화 도중 자주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곤 했다. 언젠가는 저 귀엽다는 소리에 ‘저도 알아요. 제가 귀여운 거.’라고 뻔뻔하게 응수할 만큼 가 CD님이 편해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 소망은 끝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2팀에서 근무한 지 일주일 정도 흘렀을 때였다. 한 대형 브랜드의 경쟁 PT(*광고주의 미션을 해결하는 경쟁 프레젠테이션, 보통 대행사 한 곳만 선정된다)가 새로이 들어왔다.


본격적인 광고 시안을 작업하기 전에 아이데이션 회의(*아이디어를 얻기 위하여 행하는 과정)가 먼저 필요했다. 광고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이 회의는 제작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제작팀 전 구성원이 각자 아이디어를 짜와 이를 아이데이션 회의 때 발표해야 했다. 인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도 이 회의에 참가해야 했다.


며칠간 고심해서 광고 아이디어를 짰고, 설명하기 좋도록 A안, B안, C안, 각 안 별로 정리해서 문서화했다. 이를 1차 아이데이션 회의 시간에 맞춰 TV 화면에 띄었다. 팀 사람들이 회의실에 다 모이자 바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 PPT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회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해져 가기만 했다. 차장님은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었고, 대리님은 아예 발표 화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설명을 이어나가면서도 계속 말하는 게 맞나 싶어졌다.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계속해? 아니면 말아?


 초조함은 불안을 동반했고 더 나아가 몸을 떨게 하였다. 어느새 목소리도 누가 목젖을 친 것처럼 달달 떨리고 있었다. 애달픈 염소가 다 되었지만 발표를 멈출 수는 없었다. 태연한 척하며 C안의 내용이 담긴 페이지로 넘긴 순간이었다. 가 CD님이 발표 내내 굳게 다물던 입을 열었다.


 “그만.”

 “네?”

 “너 이제 그만 말해. 듣기 싫어.”

 “....”


 어디에도 눈 둘 곳을 못 찾고 입술만 달싹였다. 가 CD님은 내가 그러든 말든, 거침없이 다음 말을 꺼냈다.


 “우리 다 바쁜 사람이야. 근데 굳이 시간 내서, 네 그 쓸데없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겠니?”


 미흡한 면이 들어 있을 거라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격렬한 반응은 나오리라 예상 못 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나는 “아니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답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 뛰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 맺혔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 CD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손짓을 크게 내저었다. 진심으로 질린다는 기색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준비했던 내 발표는 몇 분을 못 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나는 황급히 TV에 연결해둔 노트북 잭을 뽑아 다음 발표자인 대리님에게 넘겼다.


 그날이 있고 나서부터 내 인턴 생활은 차차 꼬이기 시작했다.


가 CD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심드렁했고 지겨워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최악이자 시간 낭비라는 평가는 비단 저번 경쟁 PT건에서만 국한되어 나온 게 아닌 탓이었다. 다른 건의 회의에서도 내 발표는 도중에 중단되었다. 그는 10분 남짓한 내 발표를 조금이라도 듣기 싫어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회의 시간에 최대한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런 소심한 태도 또한 가 CD님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내게 종종 이런 말을 던졌다. “의견 좀 내. 너 인턴 아니야?”


그래서 겨우 아이디어를 쥐어짜 첨언을 하면 예상했던 대로 싸늘한 반응이 날라왔다. 나중에 가선 그냥 내 의견은 묵살당했다.


광고에 대해, 인턴일지라도 아트디렉터인 이상 응당 해내야 할 역할에 대해, 특히나 광고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무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가 CD님의 말대로 그들은 바빴다. 무식한 인턴 한 명을 찬찬히 가르칠 만한 여유 따위 없었다.


뭘 모르면 적어도 아이디어의 컨셉이 참신하기를 그들은 바랐지만 한평생 진부한 사상만을 안고 산 내 머리통으로는 어디선가 본 법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최선이자 전부였다. 게다가 아무래도 나란 인간은 제작 2팀, 아니 B사의 직원들과 전반적으로 상성이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성격에서부터 마인드까지, 모조리 정반대였다.


대체로 B사의 사람들은 쾌활했고 나는 얌전했다. 그들은 수다스러웠으며 나는 조용했다. 그들은 지극히 외향적이었으나 나는 지극히 내향적이었다. 그들은 모든 일에 빠릿빠릿했고 나는 좀 굼떴다. (아, 이건 모든 회사에서도 싫어할 차이점이겠구나. 뭐, 어쨌든.)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어느새 나는 2팀에서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인턴이 되었다. 만약 <미운 인턴 새끼>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고 최악의 인턴이 우승하는 게 그 프로그램의 규칙이라면 내가 압도적으로 일 등을 하고도 남았으리라.


 2팀의 가 CD님이 얼마나 나를 탐탁지 않아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사무실에서 가 CD님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나는 그의 말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다. 미숙하니 정리라도 잘해야 갰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는 한창 업무에 관해 논하다가 도중에 말을 멈췄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시선이 느껴져 나는 갈작이던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인상을 야트막이 찌푸린 채였다.


 "메모하지 말고 내 이야기 좀 들어!"


 가 CD님은 목소리를 높이며 내가 쥐고 있던 노트를 홱 밀쳤다. 듣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잘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빼곡히 기록하던 내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던 걸까. 단번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느 정도는 안다. 왜 그가 그리 행동했는지를. 눈을 안 마주치고 메모만 하는 내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을 거란 걸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 함께 대화하는 기분이 아니라 벽에다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화 도중 딴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의 말을 필기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짜증을 낼 일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내 미숙한 행동을 반성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얼마나 나를 싫어하는지 실감하게 되어 서러워졌다. 그리고 그보다 더 서글픈 일은 내가 2개월을 다 못 채우고 2팀을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2팀을 나가게 된 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일과 중 돌연, 제작 3팀으로 차출되었다는 통보를 들었다. 그것도 다음 주가 아닌 당장 내일부터. 통보를 전한 가 CD님은 무심한 얼굴로 이러한 말을 툭 덧붙였다. “우리 팀은 이제 안 바쁘니 다른 팀을 도와.”


말속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금방 눈치챘다. 이건 1팀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명백히 차출이 아닌 퇴출이었다. 나는 끝내 쓸모를 못 증명하고 쫓겨난 것이다.


2팀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다. 더군다나 바쁘지 않다는 말도 핑계인 게 분명했다. 2팀은 여전히 바빴다. 최근에 수주한 큰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었고, 경쟁 PT 또한 곧 마감이라서 한창 진행 중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2팀은 인력이 필요한 팀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울컥, 치미는 무언가를 느꼈다. 가 CD님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감추려 애썼다. 쉽지는 않았다.


 자괴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와중,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가 CD님의 말대로이지 않을까? 3팀이 너무 바빠 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이지 않을까? 나를 내친 게 아닐 수도 있겠단 믿음이 슬그머니 피어오르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그다음 날, 내 희망 사항은 보기 좋게 바로 부서졌다. 3팀은 전혀 바쁘지 않았다. 나는 3팀 소속이 되자마자 정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3팀 사람들도 정시에 퇴근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금은 팀 일정이 조금 여유롭다는 말을 3팀의 차장님한테 들었을 때는 나는 그만 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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