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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07. 2022

2. 파견 계약직의 서러움을 아시는지요?

첫 번째 회사 : 대기업 A사

 처음으로 다녀본 회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이었다. 그래서인지 회사 건물과 시설이 좋았다. 오락실, 휴게실, 라운지, 피트니스 센터 등이 건물 내에 다 있었다. 무엇보다 사내 식당이 무척 좋았다. 마음에 쏙 들었다. 한식부터 양식, 샐러드와 과일, 심지어 분식까지 골고루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곳이 내 첫 회사라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파견 계약직 신분일지라도 말이다.


 그곳에 파견 계약직 디자이너로서 일하게 된 계기는 대외활동이었다. 해당 기업의 대학생 서포터즈였던 나는 활동을 수료할 무렵에 담당 직원에게 제안을 받았었다. 대외활동 중에 만들었던 내 콘텐츠가 상사의 눈에 들었다고, 그래서 혹시 얼마간 여기서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말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듣는 수업이 거의 없긴 했지만 졸업 전시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래서 졸업 작품 제작과 회사 업무의 병행이 과연 일정상 가능할까 걱정스러웠다. 하루정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졸업하고 본격적인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미리 일을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 다니면서 동시에 대기업 A사에서 개월간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마케팅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영상 편집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 외에 이벤트 페이지 디자인, 영상 촬영, 캐릭터 드로잉 등의 자잘한 일들을 맡았다.


업무 내용은 재밌었다. 처음으로 상업적인 내용만을 담은 콘텐츠를 제작해보았고 그런 경험은 생소하면서도 보람찼다. 얼마 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단숨에 프로 디자이너로 데뷔한 듯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감정은 얼마 가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내가 너무 바빴다.
졸업 작품 제작과 회사 출근을 같이 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출근하기 전과 퇴근한 이후의 시간을 최대한 알뜰살뜰하게 사용해야 했다. 회사에 있지 않은 시간에는 학교에 갔고, 작업실에 틀어박혔고,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함에 쪄 들어 갔다.


 두 번째 이유로는 파견 계약직이란 위치의 서러움 때문이었다. (사실 이 이유가 가장 크다.)

회사 내부 구성원에서 갑을 병정을 나눈다면, 파견 계약직은 ‘정’에 위치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 단언할 만큼 근무 기간 동안 각종 차별을 겪어보았다.


나도 안다. 정규직도, 계약직도, 하물며 인턴도 아닌 내가 서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정규직만큼의 대우를 원했던 건 아니었다. 외부인이니 차등대우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미리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이 회사에 다닌 지 고작 몇 주 만에 내 각오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장 먼저 느꼈던 차별점은 장비를 지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캐릭터 드로잉 업무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타블렛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집에서 따로 내 장비를 챙겨 와야 했다. 13인치 노트북과 13인치 액정 타블렛을 출퇴근길에 매번 들고 다닌다고 생각해봐라. 은근 고역이다.


 그다음으로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죽어도 알려주지 않는 점이었다. 
몇 번이나 팀장님께 여쭤봤지만 근무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내 개인 데이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 자리에 비치된 사내 컴퓨터를 사용하면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픽 프로그램과 플로그인 설치 문제로 인해 때때로 개인 노트북을 사용해야 했다. 더군다나 업무 지시가 카카오톡으로 날라온 까닭에 모바일 데이터를 상시 연결해 두어야 했다. 내 자리의 사내 컴퓨터에는 보안상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두었다.


그렇다면 다른 임직원들은 어떻게 업무적인 소통을 주고 받냐고? A사 전용 메신저가 따로 있었고 그걸 주로 이용했다. 당연히 그 메신저 기능도 나는 이용할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조금 아깝다 싶다. 일하러 갔는데 내 데이터, 내 돈을 쓰는 꼴이니까. 아무리 사소한 데이터도 대학생한테는 귀한 법이다.)


 마지막으로 느꼈던 차별에 대해 말하자면, 출입증 카드가 나한테만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회사 1층 로비 직원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임시 출입증 카드를 빌려야 했고 저녁에 퇴근할 때마다 꼬박 카드를 반납해야 했다.


뭐, 다소 귀찮은 과정이지만 매번 빌려야 하는 상황이 영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파견 계약직이 회사 소속이 아니니 그럴 만 했다! 보안 체계가 그만큼 높구나, 라고 이해하려 들면 충분히 기분 나쁘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임시 카드라 할지라도, 출입 기능은 다 들어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임시 카드는 일반 사원증 카드와는 달랐다. 한계가 있었다. 임시용으로는 오로지 내가 근무하고 있는 15층과 로비가 있는 1층만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비상계단 쪽으로는 아예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 말인즉슨 사내 식당이나 다른 층의 회의실을 자의로 오고 갈 수 없다는 뜻이다. 늘 누군가가 계단 문을 열어줄 때까지 혹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줄 때까지 멀뚱히 기다려야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강요했던 걸까. 아무리 파견 계약직일지라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는 근무 형태는 다른 직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업무적인 불편함이 고작 직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A사를 다니는 내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계약 기간을 연장하자는 팀장님의 제안도, 적어도 다음 인수인계자가 정해질 때까지 며칠이라도 더 일해 달라는 사수님의 부탁도 단칼에 거절했다.


개월 간에 걸쳐 겪은 불합리는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피곤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해봤기에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그릇도 부족했으리라.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콧대가 높았다. 내가 왜 을도, 병도 아닌 ‘정’의 입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부터 들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만 한다면 더 좋은 회사에 가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공모전 수상도 많이 해봤고, 대내외 활동도 몇 번 해봤고, 학점도 높은 이 내가 왜 빌빌거려야 해? 내 가치를 너무 못 알아보는 거 아니야?’


 다소 재수 없는 소리지만 당시에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조금의 미련을 두지 않고 바로 짐을 싸서 나갔다.


이 경험이 내 첫 번째 회사 생활이자 첫 번째 퇴사다.


A사 퇴사로 깨달은 건 이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불합리한 일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그걸 의연히 받아들일 만한 여유로움도 없다는 것.


다음부터는 파견 계약직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오직 정규직 디자이너 자리만이 목표였다. 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할 위치에 올라서고 싶어졌다.



대기업 A사 파견 계약직 후기

한 줄 평 : “내게는 빛 좋은 개살구”


-사내식당 ***** (지금도 식당에 있던 그 디저트 맛이 생각난다.)

-시설 ***** (1층 라운지가 정말 좋았다.)

-복지 * (정규직은 당연히 좋았겠지만 나는 없었다.)

-장비 * (위의 사유와 동일하다.)

-사내 분위기 ** (이것도 마찬가지다. 정규직은 당연히 분위기가 좋았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끝까지 끼지 못했으므로 2점을 주었다. 내 앞에서 회사 임직원들이 다른 파견 계약직 직원에 대해 열렬히 욕하던 순간을, 그리고 어차피 그런 위치의 애들은 자르면 그만이라고 팀장님이 말을 덧붙였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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