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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pr 01. 2020

그냥 하기 싫어서, 이번엔 제가 거절하겠습니다.

인턴 이야기(2)_정규직 전환 탈락 후기

첫번째 인턴 이야기(1)

"저희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실래요?"

퇴사한 그 다음날에 바로 이런 제의를 받을 줄은 미처 몰랐다.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몇 분간 대답을 하지 못했더니, 팀장님은 급한 일이 아니라며 조금 더 생각해보고 연락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팀장님은 내심 내가 이 제의를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셨던지, 벌써부터 그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나는 연락을 끊고 나서 팀장님이 알려주신 정보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며 계속해서 고민에 빠졌다.

내용을 들어보니 인턴 때의 월급보다 (물론 적어졌지만) 그렇게 크게 금액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장점으로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편히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어찌 되었던 커리어를 계속 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여러 장점이 꽤 있는 제의였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프리랜서 일을 하겠노라고 답할 수 없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내가 탈락한 사유에 대해 상세히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묘한 부담감과 불편함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오후에 확답을 드리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나는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털털한 성격의 친구는 내 고민 이야기를 듣자마자 야, 하지 마~하지 마~라는 말만을 연발했다.


"왜 반대하는 거야?"

"야. 저번에만 해도 네 불합격 사유를 말해주더니 오늘 갑자기 프리랜서 제의를 한다고?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즉, 친구의 말을 이러했다. 퇴사 다음날, 바로 프리랜서 제안하는 그 심보가 뻔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의 단호한 말을 들으면서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장단점을 나눠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직자의 신분으로는 꽤 괜찮은 조건 같았다. 친구가 말한 감정적인 부분만을 빼면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나는 결국 팀장님께 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기 위해 카톡창을 열었다.


'네. 말씀해주신 그 프로젝트에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계약서 내용은 언제 자세히 볼 수 있을까요?'


전송만 누르면 됐다. 하지만 보내려고 하는 순간에 마음속이 꿈틀거렸다.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부터 떠올랐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퇴사 전날, 그저 아쉽게 됐다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더라면 나는 기꺼이 프리랜서 제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 사원으로는 불필요한 인재인데 프리랜서용 인재로는 그냥 저냥 적합하다'라는 메시지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나는 그걸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이미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결국 나는 충동적으로 거절 문자를 남겼다.


'죄송하지만 프리랜서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


고민 상담해준 친구는 나중에 내가 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했다. 100% 프리랜서 제의를 받아들일 줄 알았다면서 말이다. 그런 친구의 격한(?) 반응에 나도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내가 지금까지 너를 봐오면서, 네가 그렇게 단순히 '하기 싫다'라는 이유로 일을 거절한 걸 본 적이 없었거든."


생각해보니 나는 하기 싫은 일이어도 장점이 있는 일이라면 늘 수락했다. 미래를 위해, 나중의 커리어를 위해, 당장의 고난과 불편함은 잊고 지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정말 내 감정만을 생각해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누가 보면 꽤 충동적이고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절하고 나서부터는 불편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안에서 꽉 막힌 듯한 돌덩이가 사라진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매번 미래를 바라보며 바쁘게 살았고, 그게 옳은 줄만 알았는데. 쩌면 그게 정답이 아닐지도. 그저 '하기 싫다'는 정말 어린아이 같은 이유로 결정을 내리는 것도 의외로 인생, 가뿐하게 사는 지름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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