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브런치북 공모전 특별상 수상 소감
쓰고 싶다고, 그러니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2020년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맹렬히 두들기던 순간도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게 그저 즐거웠습니다. 흰 페이지에 검은 활자를 빼곡히 채워가는 그 과정이 마치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엉망인 문장만 써 내려가는데도 그랬습니다. 당시 얼마나 몰두했던지, 손가락이 시큰거리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 쉬지 않고 타자를 치면 손가락 마디가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손을 주물럭거리며 키보드를 두들기는 하루하루를 보냈고, 어느덧 글쓰기는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실력은 변함없이 어설펐지만 어쨌든 저는 계속 썼고 계속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많이 잊은 사람이 됐습니다. 아마도 그건 여러 작품을 접하고 습작도 여러 편 써보면서 제 눈이 절로 높아졌기 때문일 겁니다. 쓰는 실력은 그대로인데 보는 기준은 그대로가 아니라니. 괴로움은 늘 어긋남으로부터 시작되죠. 글쓰기가 버겁게 느껴지는 일상이 펼쳐졌습니다.
종종 썼고, 자주 쓰던 글을 버렸습니다. 어떤 문장을 적어도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집필하는 속도도 심각하게 느려졌습니다. 종일 타자를 쳐도 한 페이지를 채우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느 날에는 화를 냈고, 또 어느 날에는 허탈해했고, 또 어느 날에는 슬퍼했습니다. 1,000자도 제대로 쓰지 못한 날에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을 안 가지래야 안 가질 수가 없겠더군요.
‘내가 왜 계속 쓰고 있지?’
수없이 자문해봤습니다만 어딘가 시원치 않은 답만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헤아려 봐도 저에게 쓸 이유가 명확히 있지 않았으니까요. 제 전공은 디자인이고, 대학 졸업 후 주로 디자인 작업을 하며 돈을 벌어왔습니다. 아무도 제게 글을 쓰라고 권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말은 좀 들어봤지만요. '네 본래 직업은 디자이너잖아. 글은 네 취미 중 하나일 뿐인데,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쓸 이유가 대체 뭐야?' 의아하다는 듯, 걱정스럽다는 듯 저에게 묻던 그 목소리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녀가 했던 말, 틀린 거 하나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그렇지만 2020년을 지나 2022년이 된 올해에도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작가라는 꿈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고집스럽게 가지면서 말이죠.
‘에휴, 이유 같은 건 모르겠다. 그냥 계속 쓸란다.’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도 그렇게 ‘그냥 쓰자’란 심정으로 끝까지 썼습니다. 30편의 글을 엮어 브런치북으로 발행했을 때, 그리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했을 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 대로 썼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브런치북의 조회 수를 확인할 때 간혹 울적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니 나아졌습니다. 별 변동이 없는 조회 수를 제법 덤덤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덤덤했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평일 저녁, 날아온 메일 한 통으로부터 비롯된 변화였습니다.
메일에는 특별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이 첫 줄과 마지막 줄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흔한 문장이 뭐라고, 저는 머릿속에 새겨야 할 위대한 명언처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습니다. 셀 수 없이 읽고 나서야 제가 쓴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가 수상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도저히 믿기 힘든 행운입니다.
그날은 심장이 너무 거세게 박동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여러 생각을 가졌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 글이 뽑혔지? 이거 무슨 오류는 아니겠지? 설마... 다시 읽어보니 영 아니올시다 싶어져서 당선을 무르는 거 아니야? 다소 자학적으로 사고하다가 돌연 의기양양하게 굴었습니다. 의외로 나 잘 쓰는 걸지도?! 한참 꼴값을 떨어대던 저는 동이 트기 직전 잠이 들었습니다.
전과 딱히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 눈에 차차 들어왔기 때문일까요, 그로부터 며칠 안 지나서 저는 꼴불견은 그만두고 좀 차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 글솜씨는 여전히 어설펐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태도 또한 여전했습니다. 아마 저는 앞으로도 버거워하겠죠. 마냥 즐거워하며 활자를 채우던 시절은 슬프게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분명, 쓰는 양보다 지우는 양이 더 많은 날이 번번이 찾아올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며, 가끔은 눈물까지 흘리는 가관을 보이며 타자를 치고 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통하리만큼 인기 없는 글을 많이도 탄생시킬 게 뻔합니다.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이제 와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미숙한 자의 숙명이라 여기며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버겁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여 진정 그만 쓰고 싶어질 때는 오늘을 떠올리겠습니다. 제가 글을 그냥 쓴 것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운 또한 어느 날 그냥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기쁨을, 이 감사함을 마음 깊숙이 간직하여 힘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의 마지막 글에 고마운 독자님께서 이런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세상에나, 재밌다니. 계속 써 달라니! 뛸 듯이 기뻤습니다. 신중히 답할 말을 골랐습니다. 다정하고 유쾌하고 근사하고... 아무튼 무언가 굉장히 좋은 말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말주변이 없는 바람에 결국 이런 멋없는 답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멋없긴 해도 진심입니다. 부족해도 계속 써보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으니, 어떠한 울림을 독자님께 전달해드리고 싶습니다. 꼭 그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