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밭

by 우주



지난 추석에 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하천에 산책을 데려가서 화분 하나를 보여주었다. 흰색 길쭉한 플라스틱 화분 통이 하천 난간에 매달려있었다. 네임펜으로 쓴 글자가 빛이 바래 희미해졌지만 잘 보면 손가락만 한 플라스틱 이름표에 엄마 이름이 쓰여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주민들이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사업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하자면 동사무소한테 화분을 받아서 기를 수 있게 된 엄마보다는 그런 사업을 기획하고 엄마 같은 사람을 고객, 혹은 참여자로 만나는 사람에 이입하기가 더 쉬웠다. 나는 가구당 한두 평 정도씩은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큰 사업도 본 적이 있는 탓에 너무 작아 보이는 화분을 좋아하는 듯 하는 엄마를 보며 알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식물이 다 어디 갔냐고 웃었다. 추워서 식물들이 거진 말라서 죽어있었다. 그래도 잘 보면 뭐가 있다면서 엄마도 같이 웃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베란다에 옹기종기 놓여있는 화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집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건 엄연히 '밭'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베란다는 항상 지나다니기가 불편하여 썩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었는데, 나에게는 길목을 좁히는 짐으로 인식되어왔던 그것이 사실은 엄마의 밭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아빠를 피해 대구로 거처를 옮겼을 때도 엄마는 집 뒤에 있는 흙더미를 보고 밭이라 했다. 거기에 둘째 기침에 좋은 수세미도 키웠다. 모순적이게도 '엄마의 밭' 중에는 가장 작은 밭을 보고 나서야 엄마에게는 늘 밭이 있었고 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카톡으로 하천에 있던 '엄마의 밭'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누가 그랬는지 가져가 버리고 없더랬다. 엄마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한날한시에 철거가 되었으므로 사업이 종료된 것일 테다. 순간적으로 엄마에게 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준 사업 기획자에게 느꼈던 고마움을 모두 철회하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엄마 같은 사람들에게 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엄마 같은 사람들에게 밭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면, 모르는 사이에 자기 밭이 없어졌을 때 느낄 상실감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화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일 확률이 높다. 화를 낼 준비를 해두기만 하면 타깃은 금방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는 내가 원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나는 아마 엄마에게 근사한 밭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근사한 밭을 돌보며 엄마가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것이다. 꿈은 아주 크다. 엄마에게 하루빨리 큰 병원이 가까운 전원주택에서, 마당의 텃밭을 돌보는 삶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친구처럼 참깨에 밀리는 서운한 딸이 되는 운명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엄마가 참깨를 애지중지 키우셔서 엄마의 사랑을 깨와 경쟁해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지만 그 딸은 세상에서 가장 뿌듯하고도 행복한 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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