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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 Jul 23. 2024

1미리 날벌레

또 나오면 내가 잡아서 죽여서 쓰레기통에 넣어서 못 나오게 해 줄게.




눈물을 처절하게 흘릴 준비를 하는 그녀.


다가간다.


"또 나오면 내가 잡아서 죽여서 쓰레기통에 넣어서 못 나오게 해 줄게. 걱정 마. 알았지?"


(끄덕끄덕, 눈물 또르르, 뚝)



4세 그녀는 검은 날파리 1미리짜리가 그토록 무섭다.


평행라인이 있다.


그때 나도 4세였을까.


 털이 있고 꿈틀대는 기억에는 '왕대형' 송충이가 티셔츠에 달라붙어 오른쪽 심장 언저리 즘에 있어


무섭게 울어댔다.


아무도 떼어주러 오지 않았다.


언니가 보더니 그런다.


"호들갑이야. 그냥 이렇게 털어서 떼내." (자기 옷을 툭툭 털며 떨구는 시늉을 하며)


(울다가 울다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겠구나 했는지 내 기억 속에는 내 손으로 시늉을 따라 해서 그 무서운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매번 그랬던 거 같다. 아니면 기억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기억의 오류일지 모르겠으나 이해가 있어야 할 곳에 이해받은 순간이 없다. 이것도 오류일테다.


 어떻게 인간이 살면서 평생토록 이해의 순간이 없을 수 있을까. 4세든 그 어느 순간이었을 그땐 그랬다는 것이겠다.


여러 가지 그 순간들의 이해를 하기 위해서 책들을 읽어나간다.


이해를 하고 잊고 잊고 다시 다른 관점으로 복기를 하고 최대한으로 최소한으로 깎고 깎아서 구와 같은 다면체를 얻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일 수 있다.


그렇게까지 아니해도 되지 않겠는가.


"여하튼, 그러니까 내가 1미리의 날파리는 모조리 잡아서 너의 눈물을 마르게 해 줄게. 가 0 아,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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