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거짓말 칠 줄 모르는 사람이 거짓말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절대 속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거나 포기한 채 그럭저럭 속거나, 속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은 한껏 키운 의심으로 상대방을 위협한다. 하지만 의심은 거짓말을 시들게 하기는커녕 더 무성하게 만들어 주는 거름이 된다. 거기에 진실에 대한 집착까지 더해지면 거짓말은 거대한 숲을 이룬다.
<서독이모>
64 수많은이야기를 괄호치고 넘어간 말이었지.괄호 있는 이야기가 되는 상대라면 말이지
77 애초에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친구와 나는 전시를 보는 일 말고는 거의 일정을 잡지 않았다. 미술학교에서 제공해 준 레지던시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안락했다. 작은 다이닝 키친이 있어 마트에서 장을 봐 와 음식을 해 먹었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파는 독일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더러 아시안 푸드를 배달시켜 먹기도 했다.자전거를 타고 사과 한 알 음료수 몇 개를 사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말만 안 하면 그 나라 사람인 즐 아는 시간의 나에게마저 착각인 여행을 하는 정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엔 딱 한 군데 정도의 일정을 찍고 돌아오는 편이다.
102 브레히트의 이론은 지나치게 몽상적이며 현실성이 없다는 학생의 질문에 "그러나 그의 문화 실천 도구인 연극은 아직도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지요"라고 답했다.
<나는 동화 작가다>
28.... 될 겁니다"란 말은 내 귀를 지나 심장에 꼭 박혔다. 순간, 멈칫했다.심장에 닿은 어떤 순간이 이어져 희미하나 계기를 증폭시키게 된다. 그 희미함을 써 놓으면 그때 나를 희미하게 파묻혀 사는 지금의 내가 읽을 수 있게 된다.
166 글 쓰는 게 좋다. 행복하다. 쓸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안 써져서 고통스러울 때를 겪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망망대해 같은 빈 문서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써 내려갈 때마다 태평양에서 나룻배를 저어 가는 기분이랄까. 눈 쌓인 산 위를 아이젠 없이 올라가는 기분이랄까. 하루하루가 따로 영화관에서 돈 주고 공포 영화를 보지 않아도 심장이 조여 숨쉬기 힘든 기분이랄까. 아무튼 글 쓰기는 굉장한 인내심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힘든 그 과정을 견디면서 꾸준히 써 나가다 보면, 때로 로또 없이 세상을 다 얻은 듯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그래서 박완서 작가님은 그 어떤 직업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게 작가라고 자부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166 지금까지 주로 동화를 썼다. 앞으로도 꾸준히 쓸 거다. 그 틈 사이로 어른들을 위한 글도 써 볼 생각이다. 그 첫 번째 일환으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적인 소설을 썼다. 그 말은 동화라고 말하기도 혹은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어떤 지점이 있다는 뜻도 있지만 경계를 지웠다는 뜻도 된다. 커피도 믹스커피가 달달하니 맛있고, 강아지도 믹스견이 인기가 좋다는데, 작품 하나 정도는 동화와 소설이 믹스돼 나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모든 것의 의미는 다 읽고 난 후 좋으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많이 읽어 주십사 부탁하고 싶다,. 그래야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