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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 Dec 13. 2024

크리스티나 이글레시아스

그녀의 노래는 그녀가 만드는 장소들이다

623 이글레시아스는 가르치려드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녀는 듣는 이들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조용한 가수이다.


그 다른 곳은 숨어 있지만 익숙한 곳, 개인들이 각자의 의미를 찾아 나설 수 있게 독려하는 곳이다. 그녀의 노래는 그녀가 만드는 장소들이다. 가끔 그 노래가 탄식일 때도 있다. 가끔은 두려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각의 노래 안에는, 마치 연대하며 뒤에서 내미는 손길 같은 신호들이, 차곡차곡 접힌 채 은밀히 담겨 있다. 그 신호들은 스며드는 빛을 통해 표현된다. 그녀는 거리의 모퉁이나 골목을 재현한다. 가난한 자들을 몰아내는 벽 너머에 있는 것들이다. 그녀는 작은 종이 상자를 해체한 후 그것들로 문과 복도가 있는 하숙집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모델들을 찍은 사진을 구리판에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하면 이제 그녀가 설치한 장소는 실물크기로 보인다. 말도 안 되는, 임시로 만든 거주 공간에, 인간의 따뜻함을 암시하는 구릿빛이 가득하다. 그 공간은 부조리를 더욱 강조하지만 동시에 거기서도 가능한, 작은 위안을 또한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나뭇가지로 격자를 만들어 구불구불한 둥지를 만든다. 관람객은 둥지에 든 새처럼 그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고, 거대한 망토처럼 둥지를 몸에 걸칠 수도 있다. 격자에는 글씨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거의 완결된 문장이 되려다가 결국 되지 못했다. 무엇이 중요한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언어. 하지만 그 틈과 빈 공간을, 이름 붙일 수 없는 욕망이 담긴 상상의 문자들이 채운다. 아마도 무언가 자신을 감싸주기를 바라는, 안에 있기를 바라는 욕망일 것이다.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순수한 상태가 아니라, 경험을 지닌 채,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것, 고통스러웠던 모든 것을 지닌 채 안기는 상태. 우리 자신의 지평을 지닌 채 평범한 지평의 맨 끝에 그렇게 안기는 상태.......그녀는 라피아 야자 섬유로 양탄자를 만든다. 그것들을 바닥에 두는 대신 천장에서부터 엇갈리게 흘러내리도록 배치하면, 레이스 같은 틈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양탄자가 흔들리면, 바닥에는 빛과 그림자가 물결 같은 무늬를 만들어내고, 관람객은 침묵 속에서 그 무늬를 직접 보고 살결로 느끼고 싶어진다. 말 없는 초대, 세상에서 가장 앙상한 가재도구가 전하는 그 초대가, 적대적인 세상에서의 집이라는 공간을 제시한다. 무의미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출구, 다양하고 정교한 그 출구가 침묵 속에서 발견된다......., 표정은 조금도 비슷하지 않지만, 태도나 타협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삶을 직면하고 거부하는 방식이 똑같았다. 그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 이번에도 방문했다. 여전했지만 그림 아래 적혀 있는 금욕적인 문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하려는 말이 침묵보다 나은 게 아니라면, 그냥 침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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