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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 Dec 08. 2024

문장 위빙

태피스트리



68 절망이 오차 없이 다가온다. 종종 정면보다 뒷모습이 더 무겁고 슬픈 것처럼,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여자의 표정은 볼 수 없지만 깊은 절망이 오차 없이 다가온다. 그녀의 슬픔을 진심으로 보듬는 주름진 손이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잃었지만, 곁에 남은 사람의 사랑과 위로의 힘은 그만큼 크다고 믿는다. 세상은 모질고 위험하고 각박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엔 '징검다리'가 있다. '잉태'가 있다. '분만'이 있다. 그건 끊임없는 호흡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삶의 위', '세상'에 사람들의 사이, '인간'이 있다.


Consolation 위로


이렇게 한 작품을 오래 바라본 적이 없다. 지독한 슬픔이 고스란히 몰려온다. 작품을 한 참 본 뒤 제목을 읽으니 감상이 배가 돼 휘몰아친다. <저녁이 가면 아침이 오지만 가슴은 무너지는구나> 번역의 힘인가 싶어 원제목을 찾아봤다. <Never morning wore to evening, but some heart did break> 영국 어촌의 일상과 고단한 삶의 모습을 즐겨 그린 사실주의 작가, 윌터 랭글러 Walter Lalgley 1852~1922의 대표작이다.


책, 미술보자기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어요.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지가 경기도 쪽이었어요. 여럿이 들었어도 관이 엄청 무겁더라고요. 어찌어찌 관을 메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벌써 땅을 파놓은 거예요. 삽질을 해서 파놓았는데 어쩌면 그리도 정갈하게 파놓았는지! 땅을 수직으로 90도가 딱 맞게 파놓은 거예요. 우리나라 땅의 특징이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땅의 단면이 깨끗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 너무도 멋진 거예요. 그 땅이 파여진 상태를 보니 여태까지 한 번도 파여진 적이 없는 땅인 것 같았어요.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또 인상적이었던 게 있어요. 관을 그 네모 반듯한 구덩이 속으로 내리고 빨간 천을 덮은 후 거기다 각자 삽질로 흙을 떠넣어요. 관에 덮인 빨간 천 위로 뿌려지는 붉은 흙, 순식간에 완전히 흙으로 덮여버린 관. 그런 것들이 굉장히 강하게 뇌리에 남아 있어서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똑같은 사각형의 큐브라 하더라도 땅을 파서 들어간다는 행위는 땅 위에 뭘 지어서 만드는 행위와는 굉장히 다른 것이죠.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땅을 파고 들어간다는 행위는 아마도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마치 새들이 집을 짓는 행위처럼, 우리가 보기엔 그냥 짓는 거지만 새들에게는 그 둥지는 본능이 가르쳐주는 매우 중요한 것들을 따라 짓는 거지요. 이곳이 내가 속해야 할 곳인가 아닌가를 가늠하여 자기 영역이 아닌 곳에는 절대 집을 짓지 않죠.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 새들이 본능적으로 판단할 때 정말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집을 짓는 거죠. 12


책, 땅속의 집, 땅으로의 집



단어들의 뜻을 적어놓은 사전은 소용이 없는데, 빛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신비한 그림들 앞에서 우리는 다른 종류의 정확함에 의존해야 한다. 촉각의 정확함, 갈망의, 상실과 기대의 정확함.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혹은 단어들을 둘러싼 침묵의 공간을 이렇듯 생생한 색감으로 시각화한 화가를, 나는 서양 시각예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사이 트웜블리는 언어적인 침묵을 시각화한 대가이다! 566


책, 존버거의 예술가론, 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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