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s Hals
프란스 할스
1581?-1666
내 마음의 눈으로 볼 때 프란스 할스의 이야기는 연극처럼 펼쳐진다.......그들의 제복도 어딘가 제대로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서로 나누는 건배는 영원한 우정과 신뢰를 위한 것이다. 모두 함께 번영하자는! 가장 생기있는 사람은 앞줄에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는 미힐 더발 대위다. 그의 표정은 자신이 그날 밤만큼은 젊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의 표정 그리고 동료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의 표정이다. 오늘날 나이트클럽의 테이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표정. 하지만 할스 이전에는 이런 표정이 기록된 적이 없다. 151....하지만 이 검은색은 장례식의 검은색은 아니다. 그 검은 색에선 맵시있고 반항적인 어떤 면모가 느껴진다. 우리는 보들레르를 떠올린다. 그리고 쿠르베와 마네가 왜 그토록 할스를 우러러보았는지도 이해하기 시작한다. 154......1645년 할스는 검은색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남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아마도 모델은 친구였을 것이다. 이 남자의 표정 또한 할스가 최초로 기록한 어떤 표정이다. 그건 자신이 삶에서 목격한 것들을 믿을 수 없지만, 다른 대안을 볼 수도 없는 남자의 표정이다. 그는 삶이란 부조리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아주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다. 절대 절박한 남자는 아니다. 그는 그 생각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성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인간의 목적, 그리고 신의 목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몇 년 후, 할스는 자화상을 통해 다른 인물이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155 ......이제 그림을 그릴 때면 전보다 훨씬 대가다운 솜씨를 보였다. 하지만 그런 대가다운 솜씨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할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렇게 직접적인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초기 화가들은 위대한 근엄함, 위대한 공감이 담긴 초상화를 그렸고, 그를 통해 위대한 영속성을 암시했다. 할스처럼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개인의 성정을 포착했던 화가는 한 명도 없었다. 그를 통해서 비로소 '말하듯 생생한 유사함'이 생겨났다. 모델이 보여주는 그 순간의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것들은 모두 희생된 것이다. 155....이 그림이 할스의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침대 시트일 것이다. 면 이불을 그렇게 거칠고 당당하게 그려냈던 화가는 그밖에 없었다. 162......여인의 몸과 대조적으로 시트는 거의 얼음처럼 차가운, 거의 녹색에 가까운 빛을띤다. 대상의 표면이 지닌 물질성을 그토록 충실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바로 할스의 천재성이다. 166 ......예술가가 역사를 바꾸거나 새로 만들 수는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어떤 역사의 가식을 벗겨내는 것이다. 벗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실재하는 무심함을 드러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167
운전하다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 두 시간이 걸릴 것을 네 시간이 걸린다. 차가 책방이 되었다가, 스트레칭 공간이 되었다가, 무심히 밖을 내다보는 명상의 장소가 된다. 시간마다 엔진을 식혀주면서, 운전하는 게 싫어 챙겨 온 책 애정재단, 어떤 1호를 교차독서한다. 제니퍼가 갖고 간 책이 기특하면서도 열다섯 번의 밤도 함께 교차독서 하고 싶다. 30에서 50킬로미터 거리를 달리면 사이에서 쉬면서 다녀서, 휴게소마다의 화장실이 다른 부분도 신기하다. 어디는 한국 전통 문짝 문이 걸렸고, 어디는 남천 화분이 밖에도 있고, 화장실에도 화분이 직사각형 화분에 커다랗게 담겨 화장실이 화분의 장소로, 갤러리다. 어느 곳은 편의점 옆에 절에서 파는 소품을 팔고, 어떤 편의점 옆에서는 특산품처럼 보이는 특이한 빵을 전시해 판매한다. 완전하게 조는 법은 없는데, 멍해지는 고속도로의 순간이 싫으며, 그 사이로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피해 라디오를 트는데, 거기서 더 깊은 곳이 보이기도 해서, 잠시 또한 휴게소에 멈춘다. 그리고 채움으로 비움한다. 책을 읽고 좋은 단단한 문장을 찾으면 표시를 하고 따라오는 것들이 있으면 꼭 기억하고 싶다면 메모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쓰기를 저장한다. 그래서 두 시간이 네 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