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색 다음 검은 색
이 사람은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하나의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 저기 조금씩 손을 댄다. 그렇다고 기분전환을 위해서라든지 지겨워서가 아니다. 그것 또한 레오나르도적인 논리에 따른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그마한 데생 하나하나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사고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림이나 데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문장을 남긴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했을테지만, 데생을 해독하는 것은 나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레오나르도의 말 한 마디만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유효하게 쓴(돈을 잘 썼다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하루의 마지막에 기분 좋은 잠이 찾아오듯이, 유효하게 쓴 일생의 끝에는 좋은 죽음이 찾아온다.” 이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개인주의자였던 이 사내의 자랑스런 ‘자기 선언’이다. 그리고 역사는 한 시대의 끝자락에 몇몇 금욕적이며 극기적인 에피큐리언을 등장시키는 모양이다. p.183
관객수 동원에서도 완패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은 처음부터 흥행을 목적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저예산 영화임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트도 보잘것없다. 유명한 배우라고는 쿠퍼 외에는 로레타 영뿐이다. 감독도 그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다.....아마도 40대 중반의 쿠퍼는 지금까지 연기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연기할 기회가 없는 무능한 남자를 한 번쯤 연기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작품에서는 멋지게 연기했던 장면도 서툴게 연기해가면서.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노컷 필름을 보아야 한다. 일본에서 방영된 영상을 보면 몇 군데 재미있는 장면이 잘려 있다. 쿠퍼의 팬이 보면 실망해서 팬을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배급회사의 양심가가 편집했을 것이다. 쿠퍼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의 유머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p190
이런 영화들은 공통의 언어와도 같아서, 젊은이와는
나눌 수 없는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책,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