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나이-지워진 곳에서(feat.선우정아)
수려한 문장으로 탄탄히 전개되는 이야기에 읽는 내내 짜릿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글을 잘 쓰면 글솜씨만으로도 사람을 사랑에 빠트릴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검은 사슴'속 주인공 의선을 보며 한강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인 '여수의 사랑'과 '채식주의자'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물론 이 두 권의 책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전반에 작고 섬세하고 상처입은 존재들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두 권의 책이 유독 떠오른 이유는 고향으로 훌훌 떠나버린 의선, 나신의 의선, 백치가 되어버린 의선이의 모습이 여수로 떠난 자흔과 육식과 폭력을 거부했던 영혜의 모습과 매우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책을 읽은 뒤,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골몰하게 되었다.
자흔을 둘러메고 여수 바닷속으로 자흔을 처박던 그의 아버지(여수의 사랑), 나신의 의선을 보며 낄낄대던 사람들과 의선의 도둑질을 확인하기 위해 치마 속을 들추어 보려던 남성(검은 사슴), 영혜의 육체로 본인의 예술을 하려다 성감을 자극받고 관계에까지 이른 인혜의 남편(채식주의자)
위 내용은 내가 각각의 책을 읽으며 폭력성, 강압성, 남자 인물들의 찌질한 자의식이 느껴져 매우 혐오스럽다고 느낀 부분이다.
일부 사람들은 채식주의자의 내용을 두고 야설이 아니냐는 의견을 낸다. 특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무렵에는 그러한 논쟁이 전보다 더 활발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여자 주인공의 나체 혹은 처제와 형부의 성관계라는 키워드에 꽂혔거나, 본능적으로 느낀 폭력성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애꿎은 데다 방출하여 일어난 사단이 분명하다. 채식주의자의 내용이 가부장이라는 하나의 구조로 인해 감추어지거나 가벼운 것으로 치부되는 폭력을 들추어내고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구조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뭐, 영혜가 남자잡아먹는 불여시에 쌍년같아보이기도하고 당연히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관계 장면은 폭력 속에서 생명력을 소진해가는 영혜의 시점에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내 머릿속 자흔과 의선과 영혜는 모두 건들면 부서질듯한, 아울러 폭력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하지만 작가가 만든 이야기가 이 현실세계에서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칫 심약해 보이는 이 주인공들은 사실 사방을 집어삼킨 어둠을 밝혀내는 작은 불씨처럼 결코 약하지 않다. 착한 것과 소심한 것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듯이, 여린 것과 줏대가 없는 것 또한 다르다. 자흔과 의선과 영혜는 섬세하고 여려 보일지언정 내면의 힘은 참으로 형형하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검은 사슴이 빛과 어둠의 이야기라는 공인된 해설에 수긍하게 된다.
https://youtu.be/PkrMh0tmymU?si=B0NE6G6S6CcIhe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