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루주로 입술을 칠하고
복숭아색 분으로 볼을 터치한다
마지막으로 눈썹을 그리니 얼굴이
환하다.
할머니가 화장을 한다
아니 처음으로 화장한 얼굴을 보았다
깨끗한 삼베적삼을 입고
발에는 꽃버선을 신으셨다
고운 입술에 밥을 떠 먹여드렸다
.''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세요''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결혼을 하고 신행 다녀왔다고 처갓집에 가던 날 아는 해녀에게 특별히 부탁했다며 말전복과 해삼. 귀한 음식을 내주셨다.
고령에도 어찌나 정정하 신지 기운도
좋으시고 말씀도 쩌렁쩌렁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으면 핸드폰에 할머니 집 전화번호가 수시로
울린다
'' 별일은 없느냐?''
'' 저번에 보니 경민이(와이프) 살 빠졌던데
어디 아픈 거 아니냐''
집안 제삿날은 심히 걱정이 많으셔서
한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신다
''국이 짜니 간을 다시 봐라''
고래고래 소리치신다
그리고 나만 보면 하시던 말이 있었다
'' 이서방 밥 줘라! 술 줘라!''
할머니는 항상 기운이 넘치시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로는 병원 침대에만 누워계셨다
요양병원과 응급실을 오가며 병환이
낫기를 소망했지만 점차 기력을
잃으셨다
호탕했던 목소리는 어느새
모기소리처럼 가늘어지셨고
후덕한 얼굴도 야위어간다
그래도 힘들게 '사위'라고 불러 주셨던 할머니는 정작 가족들에게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운명하셨다.
난생처음으로 입관하는 절차를
지켜보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몸을
정성스레 닦는다
이승에서의 연을 정리하듯 손톱, 발톱까지 깎고 다시 알몸으로 돌아간다
고인이 미리 준비해두셨던 삼베옷에
쌓인째 12겹의 매듭을 짓는다
상주들이 하나씩 풀면서 마지막 말을
건넨다
나는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 이서방 밥 주라!라는 말이
그리울 거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드렸다
나도 한때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머나먼 이국의 낯선 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삶이 항상 봄이 아니듯 누구나
시련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살다 보면 행복한 하루도 있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불행도 끼어든다
그래도 소소한 행운에 웃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의지하며
사는 게 삶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할머니는 98년간의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부침과 고난을 겪으셨을까?
손주들이 눈물로 배웅한다
''하늘에서는 죽 말고 맛있는 음식
많이 드세요''
할머니가 관으로 들어가고 장의사분이 '혼이여' 큰소리로 서너 번 외친 후
쾅쾅 관을 닫는다
이제 영영 이별이다
눈물은 마르고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에겐 '등대'가 하나 더 생겼다
지치고 힘들 때 할머니를 생각하고
그 환한 불빛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