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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May 14. 2021

포터필터를 자연스럽게 끼운다는 건

모 TV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의 카페는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이다."

커피 한 잔, 한두 시간 머무르는 시간, 셀피의 좋은 배경이 되어주는 미장센 등 카페는 저렴한 여가공간이지 싶다. 나 역시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한다. 커피는 집에서도 먹을 수 있고, 포장도 가능하지만 카페에서 먹는 걸 제일 선호하는 걸 보면 분명 카페가 주는 매력이 있다. 혼자 있을 땐 적당히 나에게 집중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친구들과는 취기 없이 가볍게 수다 떨기 좋은 곳, 가끔은 세상 사람들 구경하는 곳.


최근에 들른 카페는 평일 낮에도 만석이어서 bar 자리로 앉게 되었다. 돌아보니 음식이나 술이 아닌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바에 앉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앞에 드리퍼와 그라인더가 놓여있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리스타의 옆모습이 재생된다. 커피 원두를 포터필터에 담아 무게를 잰 후 정확한 원두량을 도징 한다. 머신에 포터필터를 왼쪽으로 40도쯤 돌려 끼워 넣고 오른쪽으로 90도쯤 돌려준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그 자리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유리잔이 깨끗한지 확인한 후에 얼음을 가득 담아 저울 위에 두고 물을 붓는다.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그 위에 떨어뜨린다. 마치 진갈색의 염료가 투명 빛을 물들이듯 번져나간다.


그렇게 한참을 바리스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커피 차례가 돌아왔다.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로 기억한다. 종이필터에 물을 적셔 린싱한 후 물을 버린다. 물 온도는 93도로 고정, 핸드드립 전용 그라인더에서 나온 원두를 털어 넣고 시간에 맞춰 적당량의 물줄기를 내려보낸다. 잔에 얼음을 가득 담고, 서버에도 얼음을 가득 담는다. 차가운 커피가 잔에 담겨 내게 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기까지 몇 잔의 커피를 내렸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여유롭고 멋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에 동경과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일까. 그런 자세를 얻기까지 얼마나 몰입했을지 상상하면 얻는 감동일까. 나도 앞으로 무엇을 몸에 새기는 삶일지, 그 모습은 어떻게 보일지 조금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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