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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Jan 06. 2022

골목에 머무른 시선

여행을 다닐 때 목적지로 향하는 최단코스를 계산하는 사람과 골목골목을 누비며 종종 계획이 틀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후자에 속한다. 혼자 불쑥 떠난 여행은 자유롭지만 대화의 소리가 없어 종종 적막한데 골목을 누비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소리를 느낄 수 있다. 한 시야 안에 꼭 붙어가는 연인과 길 위에 서서 싸우는 커플이 들어올 때면 달고 쓴 맛을 동시에 마시는 기분이 든다. 이따금 익숙한 장소에 가더라도 익숙지 않은 골목을 통하면 마치 다른 곳에 가는 설렘을 채울 수 있다. 골목 위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은 건 아마도 그런 내 걸음의 결과가 아닐까?

Minolta X-700, Kodak Tmax 400, 비화림

비화림은 큐레이션 서점이다. 북촌 한옥마을 옆으로 걷다가 경사진 곳에서 마주친 이 장소는 길 위에 이야기들이 책들로 빼곡히 적혀 있을 거 같다. 책방지기의 설명과 함께 책을 고르는 점과 핸드드립 커피를 동시에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저 날엔 문을 열고 들어가 보지 못했으나 언젠가 한 번 방문하리라 맘을 먹고 지나갔다.

Minolta X-700, Kodak Tmax 400,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에 책을 빌린 적은 없지만 종로에 갈 일이 있으면 그 앞 벤치에 꼭 앉아 쉬다 간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공간도 아닌데 골목 옆 언덕에 있는 이 도서관 벤치가 왜 이렇게 편안함을 선물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거친 숨을 고르기도, 수다를 떨기도 했을 추억들이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늘 그 자리에 남아있길 바라는 공간.

Minolta X-700, Kodak Tmax 400, 율곡로

높은 담벼락은 골목을 걷는 이에게 위압감으로 다가올 때가 많은데, 이곳의 담은 꽤나 높지만 나를 감싸안는 기분이 든다. 벽의 질감, 듬성듬성 있는 담쟁이덩굴 마저 반갑다. 이 길 위에서 어르신들은 학창 시절을 돌아보고, 젊은 사람들은 연인을 떠올린다. 이 길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람들의 시간이 가지란히 담겨있기 때문일 듯하다.

Minolta X-700, Kodak Tmax 400, 서울공예박물관

풍문여고 옛 터에 자리 잡은 서울공예박물관. 학생들의 활기가 이 터에 남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잘 세운 건물보다 너른 마당이 더 시선이 간다. 누구라도 품어줄 기세로 펼쳐진 터 앞에 옛 학교의 건물은 학교라는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을 선물한다. 전시보다도 이 공간 자체가 주목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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