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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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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Jan 16. 2022

푸름에 대하여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한 푸른빛 하늘을 구경하기 힘든 계절이다. 흰색과 회색 그 사이 색으로 하늘이 칠해져 있을 때는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자외선 걱정은 잠시 잊고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계절을 기다린다. 또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면 두꺼운 외투를 벗듯 회색 하늘이 한 겹 가볍게 푸른 얼굴로 나를 내려다볼 테니.

Minolta X-700, Kodakgold200, 전주

한옥에 살아본 적도, 살 계획도 없지만 하늘이란 배경 아래 한옥이 걸리는 사진은 누가 봐도 편해지는 균형감이 있다. 너무 높이 솟아 하늘을 가리지도, 너무 낮아서 밋밋하지 않게 적당한 경계에 있다. 사람의 힘이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영역과 인간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의 접점을 과거 사람들을 일찍이 알았던 걸까.  

Minolta X-700, Kodakgold200, 가고시마

하늘의 푸름이 청색이라면 땅의 푸름은 녹색이다. 흙이나 돌처럼 거무튀튀한 것들마저도 녹색과 함께라면 조화가 제법이다. 나이가 들어 취미가 생긴다면 수석보단 화초가 좋지 않을까. 일본 가고시마 지역에 큰 정원인 센간엔에 간 적이 있다. 바다를 앞에 둔 터에 구불구불하게 갖은 식물이 심겨있다. 큰 권력과 부를 손에 쥐고 한 일이 바다가 보이는 터에 자리를 잡고 정원을 만드는 일이라니. 바다와 땅의 푸름을 모두 자신의 영역에 두르고자 하는 걸 보면 푸름은 인간의 본능 이리라.

Yashica AF-D, 춘천

물에 들어가는 일은 달갑지 않은데 눈에 가득 담는 일은 퍽 그립다. 하늘의 청색은 수채화로 곱게 펴 바른 질감이라면 물의 청색은 꾸덕하게 물감을 덧바른 유화다. 종종 그 깊이를 알지 못해 두렵기도 하지만 그 깊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그 깊음 안에 뭐라도 털어놓아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그런 든든함. 속이 답답할 때 물의 푸름을 찾아 먼 길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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