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 쨍한 푸른빛 하늘을 구경하기 힘든 계절이다. 흰색과 회색 그 사이 색으로 하늘이 칠해져 있을 때는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자외선 걱정은 잠시 잊고 따스한 햇살 아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볼 계절을 기다린다. 또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면 두꺼운 외투를 벗듯 회색 하늘이 한 겹 가볍게 푸른 얼굴로 나를 내려다볼 테니.
한옥에 살아본 적도, 살 계획도 없지만 하늘이란 배경 아래 한옥이 걸리는 사진은 누가 봐도 편해지는 균형감이 있다. 너무 높이 솟아 하늘을 가리지도, 너무 낮아서 밋밋하지 않게 적당한 경계에 있다. 사람의 힘이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영역과 인간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의 접점을 과거 사람들을 일찍이 알았던 걸까.
하늘의 푸름이 청색이라면 땅의 푸름은 녹색이다. 흙이나 돌처럼 거무튀튀한 것들마저도 녹색과 함께라면 조화가 제법이다. 나이가 들어 취미가 생긴다면 수석보단 화초가 좋지 않을까. 일본 가고시마 지역에 큰 정원인 센간엔에 간 적이 있다. 바다를 앞에 둔 터에 구불구불하게 갖은 식물이 심겨있다. 큰 권력과 부를 손에 쥐고 한 일이 바다가 보이는 터에 자리를 잡고 정원을 만드는 일이라니. 바다와 땅의 푸름을 모두 자신의 영역에 두르고자 하는 걸 보면 푸름은 인간의 본능 이리라.
물에 들어가는 일은 달갑지 않은데 눈에 가득 담는 일은 퍽 그립다. 하늘의 청색은 수채화로 곱게 펴 바른 질감이라면 물의 청색은 꾸덕하게 물감을 덧바른 유화다. 종종 그 깊이를 알지 못해 두렵기도 하지만 그 깊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그 깊음 안에 뭐라도 털어놓아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그런 든든함. 속이 답답할 때 물의 푸름을 찾아 먼 길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