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냥 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기 May 02. 2022

시간의 흔적을 품은 공간들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가게들을 지나친다.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 커피를 사들고 나오는 직장인들, 횡단보도 앞 파리바게트까지.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물리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제법 먼 거리의 한적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이유는 이런 익숙한 풍경이 지워지는 지점에서 오는 신선한 환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벚꽃이 다 떨어진 날씨 좋은 날 나 역시 늘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당장 어디로 떠날 거냐 묻는다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겠지만 눈에 익은 것들이 전부 사라진 공간 안에 나를 집어넣고 싶다는 욕구만은 확실하다. 단 몇 분이겠지만 낯설고 익숙지 않은 공간에 발걸음을 멈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하는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잡아둔 듯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과거로 회귀한 분위기가 아닌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시간들이 나란히 마주 한듯한 공간들을 소개하려 한다.

불필요상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46길 16-5

이태원에 빈티지 제품을 취급하는 작은 상점이 있다. 나는 잔과 소서를 사기 위해 방문했었는데 오히려 그 공간을 구성하는 가구와 조명에 매료되어 언젠간 이런 공간을 꾸미리라 다짐을 하면서 나왔다. 골목 사이 반지층 아래 숨어있는 불필요상점에는 빈티지 제품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현재에도 수없이 많은 신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곳의 물건들은 세월이라는 프리미엄이 더 붙는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많은 사연들이 달려있어 내게 말을 건네 오는듯하다. 빈티지샵은 여기저기 있으나 이곳의 진열 방식과 위치가 주는 임팩트는 특별하다. 한국도 외국도 아닌 과거와 현재 사이 그 어디쯤에 시간을 품은 오브제를 파는 마법 상점 같다. 커피 한 잔, 조명의 온도가 지겨워질 때 이곳의 물건으로 바꿔보며 특별한 기분이 드는 마법을 부릴 수 있지 않을까?



모이세해장국 무근성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북성로 45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이동 탑동로 5길

인스타그램을 보면 제주여행 사진 중 커다란 d 글씨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디앤디파트먼트, 이솝, 프라이탁스토어 등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지역 근방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한적한 구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에 가족이 있어 1년에도 대여섯은 찾게 되면서 제주는 내게 여행지로서의 가치를 잃었다. 제주에서 보는 풍경은 육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고 시야가 물려갈 때쯤에 보는 오랜 흔적을 품은 제주의 골목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 세월을 새긴 간판들을 보며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떠오른다. 젊은 시대가 환영하는 브랜드들과 오랜 시간을 지키며 있는 가게들이 같은 동네에 있다는 사실에 두근거린다. 


시야가 답답하고 타성의 젖어갈 때, 어딘가에 남아있는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체취를 남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