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는 방법

무기력과 우울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by 원숭이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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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달리는 것이 익숙지 않다. 재작년까진 짧은 거리지만 아침마다 꾸준히 뛰었다. 그러다 코로나를 핑계로 1년 넘게 뛰지 않았다. 다시 뛰고 싶은데 시작이 쉽지 않았다. ‘그냥 나가서 뛰는 건데, 어려울게 뭐가 있어?’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뛰지 않으면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다. 알람에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드는 그 한 시간은 하겐다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만큼이나 진하다. 그 달콤한 잠에 취해 나는 생각한다. 저녁에 뛰면 된다. 그런데, 막상 저녁이 되면 집에서 할 일이 많다. 저녁식사 전후로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리 흐른다. 그러니까 할 일들을 마치고, 느지막이 밤에, 선선할 때 뛰면 되겠다. 그런데 늦은 밤이 되면, 뛰면 생체리듬이 깨져서 잠이 잘 안 오니까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뛰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고 보면, ‘관성’이란 것은 물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또한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자연의 법칙이란 생각이 든다. 한동안 뛰지 않은 나에게는 ‘언제든 달릴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라는 자기 합리화가 깊숙이 자리 잡아 뛰지 않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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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건강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달리지는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리지 않는 이유는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이라면 “운동이라면 다른 운동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혹은 “달리기, 재미없고 지루하잖아.”정도로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좀처럼 달릴 엄두 자체가 나지 않았다. 정말로. 목욕재계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전해야만 할 것 같은 ‘건강 과제’처럼 느껴진다. 무기력감, 상실감 혹은 우울감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달리세요. 나아질 수 있습니다.”라고 입 아프게 말해 봤자다. 머리로는 잘 아는 얘기지만, 실제 몸을 움직인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죠.


지금 나는 아침마다 ‘뛰러’ 나가고 있다. 무기력과 나태, 자기 합리화가 뒤범벅된 정신적 진창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키 역할을 한 것은 ‘최소한의 목표’였다. ‘최소한’이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아주 작은 목표를 의미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대문 밖까지만 나서기’를 목표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문 밖에만 나가면, 바로 들어와서 잠을 자도 상관없다.(죄책감 없이 기분 좋게 잘 수 있다.) 다만 마음이 바뀌어서 그냥 뛰고 싶으면 뛰어도 될 정도로 준비는 해서 나간다.


DSC06194.jpg 더도 말고 한 걸음만 떼면 된다.


아침 알람이 울리면 마음속 천사와 악마가 충돌한다. 차이는 천사와 악마의 충돌지점이 달라졌다는 데에 있다. 달리기를 목표로 했을 때에는 “피곤한데 무슨 달리기야, 그냥 자자.”의 악마의 속삭임이 있었다. 그런데, 최소한의 목표로 정하고 나면 “아, 그깟 거 빨리 해버리고 마음 편히 자자.”라고 속삭인다.


그런데, 막상 모든 준비를 하고 대문 밖을 나서면 바로 들어오기가 아깝다. 신선한 아침 공기가 코를 찌르면, 호흡이라도 한번 더 할까 싶어 진다. 그러다 대문 밖을 나선 김에 놀이터까지만 걸어볼까 싶고, 이왕 걷는 거 놀이터보다는 한강이라도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한강에 나가 걷는다. 걷는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문득 ‘오늘 컨디션 좀 괜찮은데 조금만 뛰어볼까’ 싶은 날이 온다. 그날은 호흡이 막힐 때까지만 뛰어 본다. 모처럼 뛰면 달릴 때마다 정강이가 아픈 현상도 있다. 그런데, 며칠이면 괜찮아진다. 처음엔 100미터만 달려도 숨이 가빴는데, 300미터, 500미터 늘어나더니 1킬로미터, 3킬로미터, 5킬로미터까지 쭉쭉 늘어난다. 정말 소설 속 이야기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습니까. 진짜인지 아닌지 여러분도 사소한 목표에 도전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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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일지라도 고요한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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