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0114

재회

by 원숭이마법사

나는 서둘러 그곳을 나와, 그녀를 찾아갔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여긴 왜 찾아온 거고?"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그녀는 또렷하다.


"우린 끝났잖아. 오래전에... 날 다시 찾아오지 않은 건 너라구. 나도 너처럼 다 잊고 나의 길을 왔어. 이런 얘기는 그때, 아니 적어도 내가 용기를 내어 널 찾아갔을 때 했었어야지."

그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가스에 올려놓은 물 주전자처럼 차츰 높아졌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시도 그녀를 잊어본 적이 없다. 성공적으로 잊었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지나가는 소나기같은 것이었다. 아니, 장마라고 생각해도 좋다. 결국 언젠가 해는 뜨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나의 매순간에 녹아 있다. 5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그녀를 생각하곤 한다. 겨울엔 화이트초코렛모카, 여름엔 캬라멜 프라푸치노와 같은 일상의 공식처럼 삶의 어디에나 그녀의 잔상이 남아있다.


모두 잠든 늦은 여름밤 그녀와 드라이브했던 강변의 도로와, 차창으로 들어오는 설레임의 공기들,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그녀는 나에게 조곤조곤 속삭인다. 그녀는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김밥을 먹다 흘렸다 같은 사소한 이야기할지언정 선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설사 그녀의 입에서 따분한 고대 그리스 철학 이야기나 이해 불가능한 상대성 이론의 도출 과정이 풀어지고 있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그녀와 함께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다.


백색 빛을 내는 하얀 디지털 시계의 끝자리가 또 다시 바뀌었다. 나는 돌아가야할지 이곳에 남을지 다시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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