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 아버지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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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숭이마법사

나의 아버지는 자살했다. 내가 15살 영국 에든버러 근처에 있는 작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인생은 멈추면 도태되는 거란다.”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네 생일에 선물한 최신형 맥북 같은 거야. 지금은 가장 좋은 노트북일 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새로운 성능의 맥북이 늘 나오지 않니? 그러니까 아마 10년 뒤면 네게 선물한 최신형 맥북은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전락하고 말아. “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동생을 기다릴 때였다.

“항상 시간의 편에 서라. 시간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어. 시간과 함께 가치가 높아지는 것들로 네 주변을 채워야 해.”

나는 공원 저편에서 내 또래의 시소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 둘의 움직임을 따라 좌우 그림자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뭉게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나오자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은 모호해질 뿐이었다.

시간의 편의 서라, 시간과 함께 가치가 높아지는 채우라니,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되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다. 얼른 가자.” 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는 벤치에서 일어나 공원 저편에 나타난 동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것들 덕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소유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현재까지 나는 항상 생각했다. 아버지는 시간의 편에 선 것일까. 나는 시간의 편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가 남겨준 것들은 대체로 그러했다. 숫자의 개념으로 보면 그렇다. 통장의 잔고는 이자 혹은 배당, 수익금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늘었다.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서류들도 글을 숫자로 치환하면 대체로 비슷했다.

확실히 아버지는 시간의 편에 섰다.

덕분에 내 주변 숫자군단은 불어나고 있지만 아버지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뱃속 깊은 곳에서 구역질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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