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현역입니다.
저는 7월에 태어났습니다. 겨울 아이가 아니라 여름 아이인 셈이지요.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미 7월이라는 말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나를 낳으신 어머니의 고생은 이미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제 생일은 장마가 한창인 시기여서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불쾌지수는 벌써 정점을 찍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더위와 땀 그리고 모유 수유는 어머니를 지치게 만드는 3대 요소였습니다. 자식만 아니면 이미 포기했을 육아에 결국 아버지께서는 당시 귀하고 귀한 선풍기를 한 대 장만하기로 결심하시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나서 거금을 주고 일제 도시바(TOSHIBA) 제품을 마련하셨습니다. 날개는 크고 몸체는 단신이어서 얼핏 보면 가분수 같은 선풍기입니다.
그런데 반전은 지금부터입니다. 이제는 제 곁에 없습니다.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선풍기가 아직도 고향의 부모님 댁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터도 고장 한 번 나지 않고 이상한 삐그덕거림도 없으며 녹슬지도 않고 심지어 버튼도 작동을 잘한 채로 말입니다. 문제랄 건 아니지만 유일한 단점은 110V 전원이기에 소위 도란스라고 하던 변압기가 필요하다는 점뿐입니다.
어머니는 저거 덕분에 여름을 났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하시며 기특한 표정도 지으시지만, 간혹 생기던 땀띠가 그리도 야속했다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선풍기는 내 나이와 같은 셈입니다. 생산날짜는 분명히 나보다 빠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선풍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 놈들이 물건 하나는 참 잘 만들어!’ 일본을 싫어하는 분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1960년대 초반 우리의 기술력에, 변변한 제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그다지 반박할 여지도 없는 사실인 셈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그때의 자조적인 이야기를 넘길만한 형편이 되었기에 이런 표현도 가능한 셈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술력은 가히 세계적입니다. 몇몇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늘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이니 제 어릴 적 상황에 비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참 대단한 일이지요. 이러한 기저에는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정부의 정책적인 표어와 이를 잘 따라 준 국민의 합작품입니다.
이제 타국의 기술로 우리의 기술을 덮는 시절은 지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술력이 남들보다 우월한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이제 세계인 셈입니다. Made in Korea라는 표식은 이제 자부심이라는 제품의 상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정체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나라도 있을 것이라 말입니다. 굳이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품질을 더 중요시하는 게 낫겠구나.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면 다 이루었다! 생각하기보다 이제는 내실이다! 결심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