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기억
중2 때의 어느 화창한 봄날 잠깐 꿈을 꾸었습니다. 부모님과 우리 4남매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다녀왔습니다. 재미있게 놀다 왔는지 서로 정신없이 이야기도 나누며 웃다가, 순간 차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다음 역은 **, **역입니다. 잊으신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십시오." 우리는 부랴부랴 기차에서 내려서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막냇동생이 안 내렸는데 기차가 저만치 떠나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그만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 꿈은 몇십 년이 지난 요즘에도 뇌리에서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역내의 플랫폼과, 떠나는 기차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때 꿈에서나마 기차를 막아 세워야 하는데! 동생을 챙겼어야 하는데! 후회막급했거든요.
그 꿈을 꾸고 며칠이 안 되어 제 막냇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제껏 살면서 예지몽(豫知夢)이라는 게 있는지 신경을 안 쓰며 살았습니다. 분명히 있는 것은 아는데 종교적으로도 설명이 되는지도 모르고 지냈지요.
그 후로도 제 동생은 내 꿈에서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내가 미웠었나? ‘엉아’ (저를 형이라 않고 엉아라 불렀습니다.)가 싫었나? 싶기도 하고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형한테 장난감 사 달라고 조르던 5살 녀석이, 돈이 없어 장난감 하나 못 사 준 엉아에게 되게 섭섭했었나? 싶기도 한 날들이 지금도 많은 후회로 남곤 하지요.
가끔은 명절이 다가오면 이렇게 헛헛한 생각들이 하나씩 빼꼼히 솟아오릅니다. 어릴 적 오락실에 있던 ‘두더지 잡기’ 마냥 하나씩 망치로 때려주고 싶은 기억도 있고, 잡는다고 잡는 데도 워낙 순식간에 사라져 못 잡고 놓치는 기억도 있으며, 충분히 잡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잡기를 포기하는 기억도 한두 개는 남겨놓고 살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