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남았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 나훈아라는 가수가 소위 리사이틀(Recital)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왔습니다. 남진과 함께 인기의 두 축을 이루던 가수의 등장은 조그만 소도시에 대단한 바람을 불게 했습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 누나는 새벽부터 좌불안석입니다. 아침이 되어 공연극장에 전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겠느냐? 통화는 안 되느냐? 하지만 연예인이 이런 시시콜콜한 전화에 응할 일도 없을뿐더러 한두 사람이 전화할 일도 아니니 응할 형편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전화는커녕, 그달 전화요금 폭탄에 어머니께 큰 꾸지람만 얻어들었을 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우상처럼 여기는 연예인 하나 없이 지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탐닉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TV를 보아도 늘 같은 풍의 노래며, 배우나 탤런트도 아이들의 함성을 들을 정도의 아우라를 지닌 분은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연예인을 딴따라라 부르며 무시하기 일쑤였고 자식 중에 누구 하나 배우나 가수를 한다고 하면 눈을 부릅뜨기 일쑤였던 그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마 그런 편견을 타파하려면 여러 세대는 지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순전히 제 의견입니다만 방송금지며 활동 금지의 암울한 시절을 지내고 제한이 해제되며 투쟁의 시절을 보낸 연예인이 활동을 시작하고, 조용필이라는 당대의 스타가 나오면서, 그리고 대학에 연극영화학과가 생기고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인에 대한 편견은 서서히 호감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음악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도 다양해지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중흥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지금의 K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저 부러워만 했던 미국문화는 물론 J-Pop, British pop, 더 나아가 홍콩 영화까지 우리가 빠져들었던 외국 문화는 이제 부러움의 대상은 아닙니다.
이제 배우나 가수는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수위를 차지합니다. 그만큼 인식도 달라졌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최상의 훈련이 제공되는 시대입니다. 그마저도 열심을 다 한다고 해서 100% 모두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요, 대중의 인기 또한 원하는 만큼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며 언제 어느 시점에 도태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쯤 되면 사회의 통념도 부수고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값어치를 올려 낸 그들의 노력과 인내에 박수를 보냅니다. 덕분에 대중의 눈과 귀는 즐거워졌으며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말도 안 되는 편견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딴따라 편견은 이제 뿌리 뽑혀야 마땅합니다.
무슨 일이든 그렇습니다. 즐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분야는 그냥 제자리이고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저부터 노력하고 발전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