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은 충분한데!
전화기를 바꿀 때쯤이면 늘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앱의 정리입니다. 사실 수많은 앱 중 상당수는 손가락 한 번 점지되지 못한 채 공간과 메모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도 전화기에서 퇴출당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혹시라도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앱이 제게도 몇 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입니다만 다른 하나의 고민이 있다면 바로 연락처 또는 번호입니다. 수많은 전화번호 중에 자주 연락이 오고 가는 사람은 사실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카카오톡의 단체방까지 연락의 범주에 넣는다고 할지라도 인원의 수는 늘어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친분으로 유지한다고 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릅니다.
이렇듯 개인의 업무라든지 사업이나 영업 목적의 연락을 배제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조금은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통화를 해도, 약간의 농을 문자로 주고받아도 흉이 되지 않는 그런 사이를 말합니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나 선후배 정도면 그나마 그런 범주에 포함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해도 번호 한 번 눌러보지 못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서로 차단하고 차단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늘은 연락처를 살펴보다가 든 단상이 여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저 또한 수많은 연락처가 남아있고 일부는 정리까지 했음에도 가만히 둘러보니 정말이지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전화번호가 한둘이 아닙니다. 다행히 게 중에는 모임을 통해 일 년에 몇 번은 만나는 분들이 계셨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70~80% 이상 연락 두절인 분으로만 남을 뻔했습니다.
하기야 내가 그럴 때는 상대방도 같은 입장이겠지요. 사실 카카오톡이 소통에 좋은 도구임에는 분명한데 문자로만 소통하다 보니 친밀함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늘 보던 사람이면 모를까, 문자친구가 갑자기 얼굴을 보며 대화를 시도하려면 급작스레 어색해지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업무차 저장된 번호를 하나씩 제외하고 나니 개인적인 친분으로 남은 분들이 제 생각보다는 적었습니다. 더 나아가 가족이나 친지를 제외하면 나에게 친구라고 불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적어진 느낌입니다. 말이 좋아서 진실한 친구 몇몇이면 족하다는 위로를 주고받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보면 이렇게 얕디얕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절감하느라 살짝 당황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나를 친구로, 또는 멘토로 그리고 멘티로 남아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성경을 보고 있노라면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서 7.000이며 300이며 70이며 12가 언급되고, 이렇게 다양한 수의 아군이 있음을 알게 되지만 과연 마음을 보일 수 있고 또 읽을 수 있으며 나를 알아주는 이가 신(臣)에게는 얼마나 남았을지 계산이나 될지 살짝 부담스러운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