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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Aug 29. 2023

식은땀이 이런 거구나 싶었던,

어릴 적 그리고 중년의 기억들

(이미지출처:네이버) 용산이랍니다.


중 3이었던 어느 초겨울, 기관지염이 생겨 시내 의원에서 진료받고, 시장을 들렀다 오시겠다는 어머니와 떨어져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가야 할 길을 가던 도중 역전의 조그마한 길을 지나는 순간 어느 낯선 아주머니 한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총각, 놀다 가.’ 정말 무슨 뜻인지 몰라 놀란 표정을 짓기도 전에 다른 내용의 말이 뒤를 이었습니다. ‘비싸게 안 받을게.’     


그때야 이곳이 말로만 듣던 사창가로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함과 호기심은 둘째치고 중 3 까까머리 학생의 심장은 갑자기 무언가에 맞은 거처럼 쿵쾅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사춘기 청소년이라 한들 그 정도의 유혹에 흔연히 받아칠 준비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미성년자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못 하던 포주는 100미터 이상을 따라오더니 대답 없던 나를 뒤에 두고 다른 이를 꼬시러 가버렸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40대 후반에 일어났습니다. 서울에서 학회가 있어 강의를 듣고 다시 KTX를 타려 용산역에 들렀습니다. 승차 시간에 여유가 있어 주변 건물이 뭐가 있을까? 싶어 길을 건너 돌아보던 중 갑자기 싸한 분위기가 감지되었습니다. 홍등가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문 안에는 온갖 자세를 하며 젊은 여인들이 앉아있었습니다. 다행히 사춘기 청소년 시기에 비하면 여유가 많이 생긴 까닭에 자연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오늘은 문득 그 기억에 머무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이런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인신매매라는 사건의 배경에는 항상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의 배경에는 분명 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거란 짐작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라고 내세우지 못하는 직업인 데다 성경에서도 질시와 보호 대상을 넘나드는 직군에 속합니다. 심지어는 죄인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정도 천대받던 직업의 선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충격은 옆에서 보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게 일반적 통념입니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은 그 부분을 놓치며 삽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람의 직업을 보지 말고 그 내면을 보자는 주장입니다. 그 가치관이 확고할수록 그 사회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선진국이라는 개념에는 단순히 물질적 부유함만 포함하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 문화적 고귀함이 없는 부유함은 자칫 무기로만 전락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부유함을 선진국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경제적 가치만을 최고로 여기던 공업중흥기를 넘어 이제는 그 중흥에 이념적 가치를 잘 덧입혀야 우리 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는 흉악한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시대의 방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할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지만 요즘 세대는 아랫물이 맑아도 부유물로 가득한 윗물이 된다든지, 그 반대로 맑은 윗물에 비해 오염된 침전물로 가득한 아랫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바뀌어야 우리가 바뀝니다. 우리라는 집단에 묻어가려는 소극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오염된 우리에 물드는 나 자신만 남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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