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Dec 22. 2023

잠충이?

내가 그러합니다.

(이미지출처:영어이야기) 이런 느낌이죠.^^


저는 어릴 적부터 잠이 많았습니다. 잠도 많을 뿐만 아니라,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바로 수면 Mode로 전환됩니다. 이런 나의 습관은 부모님에게는 신기함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걱정거리로 작용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사당오락(四當五落)이 하나의 진리로 고정되던 시절을 살아온 우리 세대에게 잠이 많다는 건 크나큰 흠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내가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라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잠도 많을 뿐 아니라 깊이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제법 해주어야 하는 고등학교 이후로 부모님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대학 졸업 때까지 내내 이어졌습니다. 다른 집 애들은 몇 시간만 잔다더라. 밤도 새운다더라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내게 하기 바쁘셨고 그런 애들 가운데 성적이나 석차가 눈에 띄게 올랐더라는 소문 뒤에는 늘 나의 잠 많음에 대한 타박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략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공부한다는 이유로 밤샌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 입시 전은 물론, 대학의 본과 시절 산더미와 같은 시험을 앞두고도 반드시 잠은 잤습니다. 그 버릇을 극복하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도 소기의 성과는 거둔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서로 번갈아 가며 쪽잠을 자다 깨워주고 마치 보초를 서듯이 공부를 한 적은 있습니다.
 
 
 의대 6년을 마치고 의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국가고시까지 모두 마친 후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첫마디는 축하한다는 말이 아니라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약간은 의외입니다. “난 네가 잠이 너무 많아서 6년 안에 졸업하기는 어려울 걸로 예상했다.” 그리 생각했다가 의사면허까지 땄으니 고맙다는 뜻이었지요. 여하튼 그 정도로 잠이 많았습니다.     


수면장애가 있으신 분에게는 염장 지르는 말이기는 하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도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닙니다. 청소년 시기에 부모님, 특히 아버지의 한숨은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남들은 잠을 푹 자고 나면 개운하고 기분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가장 먼저 들곤 했습니다. 나는 잠만 자 대는 미련 곰탱이는 아닐까? 최상급의 게으름쟁이는 아닐까? 그리 여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 답답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요? 청소년 시절, 아버지께 폭풍과 같은 잔소리나 혼이 난 후에 저는 열에 아홉 정도는 바로 내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상관없이 잠을 잤습니다.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일종의 반항이기도 했고, 자는 시간만큼 이라도 머리나 마음을 다스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바탕 자고 나면 모든 게 원상복구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그리도 싫어하시던 잠충이(-蟲-)의 모습 때문에 관계의 악화만 더 초래했을 뿐입니다.          


결혼 후에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최소한 내 아버지의 방식대로 내 자식을 키우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고 다행히 아이가 30이 넘도록 잘 지켰다고 자부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는 차라리 내 결심을 잘 이행했다기보다는 아이가 잘 자라주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아이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과로 보답을 해주었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안달하지 않아도 자기의 몫을 잘 해냅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믿음과 신뢰요 격려입니다. 방향만 부모가 잘 잡아주면 될 일입니다.     


내 나이가 환갑이 넘어도 잠에 대한 내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잠보야! 게으름뱅이요, 미련 곰탱이야!라는 생각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잠은 분명 축복이라 말씀하지만, 이는 열심히 일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요, 잠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겪어 본 이들에게 해당하는 복일뿐 애당초 나처럼 일 년, 365일 늘 잘 자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공허한 위로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이 물결치듯 밀려와도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하겠지요. 어찌 됐든 간에 잠과 친한 하루에 감사하며 살 일입니다. 주님, 오늘도 맛난 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전 24화 다섯 가정의 소소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