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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Dec 19. 2023

회식문화의 지긋지긋함을 고발합니다.

요즘도 그러나 싶은!

(이미지출처:pann.nate.com) 옛 생각을 일으키는 그 분위기**



직장에서 불편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회식문화를 꼽았습니다. 요즘이나 되니까 각자의 취향이나 성향을 존중해 주지만 제가 사회초년병 시절에는 선배 앞에서 꼼짝 못 하고 벌벌 거리기도 했고, 음식 예절을 따져가며 불편하게 먹는 것도 달갑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더욱 불편했던 점은 다름이 아니라 강제에 가까운 음주문화였습니다. 
 

저처럼 술을 마시지 못하는 직원은 넘어가면 좋겠는데 억지로 권하는 것도 모자라 협박과 쌍욕, 그리고 그 눈길 등은 차라리 트라우마에 가까웠습니다. 그냥 오손도손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가 끝나면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전투적으로 회식을 치러내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선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좋은 자리일 뿐, 사실 사회 초년생에게는 그냥 부담스러운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구석에서 술을 잘 못하는 무리들과 함께 조용히 음식을 먹다 보면 꼭 싫은 소리 한마디라도 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습니다. 밥만 처먹으러 왔냐? 술도 못 마시는 것들이란! 그런 類의 비난들은 밥맛 떨어지게 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평균 체중 이상의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듣는 모멸감 중의 대표적인 예가 인신공격성 발언입니다. 덩치는 산(山)만 한 새끼! 안주나 축내는 놈! 정도의 말은 정말로 많이 듣는 말입니다. 대놓고 내 앞에서 못하는 사람들도 한두 번의 험담으로 해 봤음 직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술을 못하거나 안 마시는 게 그리도 욕먹을 짓인지 늘 궁금해하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두주불사(斗酒不辭)를 큰 훈장처럼 여기거나, 한껏 놀아진 목청으로 대화하거나, 젓가락 장단 정도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술자리에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노래방에서도 이는 비슷합니다. 부를 줄 아는 노래가 발라드처럼 조용한 노래에 한정되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원흉 정도로 몰리기 딱 좋았습니다.
 


 그나마 날이 갈수록 분위기가 좋아지는 건, 저에겐 정말 고무적(鼓舞的)인 일입니다. 제가 몸담은 직장이 마침 그런 분위기의 좋은 곳인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면 저는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사실 가족이나 친구끼리 식사라도 할 일이 있으면 아직도 시끌벅적한 곳은 일단 피하고 봅니다. 왜 식사할 때 시끄러워야 하는가?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특별히 아이들의 산만함을 방관하는 것 또한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에 어느 식당 앞에 놓인 입간판에 No Kid No Pet Zone이라고 쓰인 안내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사업주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번잡한 걸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옆에는 8세 이상의 아이들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제 직장인 병원에서 부서 회식을 한다는 공지를 받았습니다. 저마다 무엇을 먹느냐, 어디에서 모이느냐? 설왕설래하는 이면에는 분명 기대와 우려가 늘 공존합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분명 기대와 우려로 갈릴 테지요. 세월이 흘러도 큰 틀은 변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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