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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Nov 27. 2023

절(寺)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아니, 무엇을 생각하고 사색하게 될까요?

(이미지출처:hyunbulnews.com) 해인사입니다.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주중에 시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연차를 사용할 수 있어서 내게 할당된 날이 충분합니다만 특별히 제가 몸담은 과는, 수술을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가 달려있어서 어지간하면 그냥 근무하는 게 맘이 편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여름의 피서(避暑) 봄의 상춘(賞春) 가을의 향락(享樂)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어쩌다 크게 맘먹고 며칠 짬을 내기는 합니다만, 간혹 놀고 난 후의 업무 복귀가 참 힘이 든 때가 있어서 종종 그 느낌이 싫기도 합니다.     


그럭저럭 중간에 공휴일이 있다든지, 주말 정도에 잠깐의 여행을 즐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봤자 잠깐 나갔다가 저녁에 귀가가 가능한 여정이지만 최근 들어 느끼는 점이 있다면 그동안 안 다녀본 곳이 이렇게도 많았던가.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마음이 말랑말랑하게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아름답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얘는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고 내 기억에 남은 장소는 모두 좋게 남았습니다. 더불어 얻은 수확이 있다면 외국의 좋다는 풍경도 우리의 좋다는 풍경을 느껴 본 자라야 가능하겠구나. 싶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꽤 괜찮은 수확이라 칭찬하는 중입니다.          



상당히 오래전의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누구라 지목하기 곤란하지만, 어느 날 캄보디아에 3박 4일간 여행할 수 있는 포상 휴가를 받았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한 데 대한 회사의 배려였습니다. 경비도 제공하고 부부 동반의 기회였는데 이상하게도 가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이유라는 게 다소 황당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인데 불교가 만연한 나라에 왜 가느냐는 거였습니다. 둘러봤자 죄다 절뿐일 텐데 가기 싫다는 거였지요. 절에 예불하러 가는 게 아닌데 그냥 다녀오시라 해도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하여 그 포상 휴가는 취소되었습니다.    


 

굳이 캄보디아를 포함하여 불교가 만연한 동남아 국가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절이 없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유럽에 자리하지 않고서야 성당이나 교회보다 절이 많은 게 당연한 일입니다. 절에 뭐 볼 게 있어서 구경하러 다니냐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참 편협한 사고를 지니고 있구나. 싶어서 딱히 대꾸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명승지를 다닐 때마다 이렇게 종교를 염두에 두며 다닐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당시의 역사나 배경, 분위기나 사상을 배우고 습득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 논리로 따지자면 기독교인들은 구한말부터 내려오는 순교지를 포함하여 성당 건물 등등의 유적지만 다녀야 한다는 이상한 속박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몇 주 전에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합천 해인사를 다녀왔습니다. 팔만대장경도 보고 당시 그를 새겼을 선조들의 간절함, 나라의 운명, 그리고 그를 잘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정성을 느끼고 왔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있음도 그런 선조들의 노고가 있음이며 그를 마음에 새기면 될 일입니다. 거기에 종교가 끼어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의 지향점에 대해 깊이 사색하며 다니는 중입니다. 사회의 힘든 일, 나라의 위기, 지구의 몸살 등을 접하며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민도 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래야 종교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목사님도 그런 목회 철학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늘의 일이요, 그를 위해 성도의 본분을 다하는 일은 신자(信者)의 몫입니다.     



몇 세기가 지나 우리의 후손은 21세기를 무어라 이야기하고 평(評)할까요? 가만히 상상하다 보면 가끔 등골이 오싹할 때가 있습니다. 그 책임의 도상(途上)에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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