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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Apr 11. 2024

한참 전에, 내가 먹었던 밥은

꿀이었던 적이 있었지요.

(이미지출처:JUDY'S PICK) 참 맛있었죠.^^


어릴 적 근처의 친척 집에 종종 놀러 다니곤 했습니다. 집안의 늦둥이 막내이신 아버지의 장남, 저에게는 형이나 누나가 없어서 골목길 친구들과 놀이도 시들할 즈음에는 걸어서 5분 정도면 충분히 닿을 큰집이 첫 번째 방문지입니다. 4살 터울인 막내 형과 재미있게 어울리곤 했지요. 그 위의 누나도 저를 예뻐해 주었고 큰엄마도 마치 손자 예뻐하듯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도 저도 진력이 나면 15분 정도 걸리는 외갓집에 들릅니다. 그곳에는 외할아버지도 계셨고 외삼촌, 이모들이 있었습니다. 엄마보다 결혼이 늦으셨던 큰삼촌의 결혼식에 나도 참석했던 기억도 나고 큰 숙모가 아이를 참 예뻐하시던 분이셨으며, 외가를 통틀어 제일 첫째 조카여서 그런지 저를 더 예뻐하셨지요. 여기저기 놀다가 땀이 날 때쯤 되면 큰엄마나 큰 숙모가 부릅니다. 밥 먹어라!~~ 그렇게 밥까지 먹고 나서야 집에 옵니다.          


어느 날인가? 학교 들어가기 전의 일입니다. 추운 겨울날, 마침 들른 큰집에서 점심을 먹고 계시더라고요. (큰엄마) 밥 먹었냐? (나) 응, 먹었어. 그런데 사실은 밥을 안 먹었거든요. 밥상을 무르고 형과 누나와 잘 놀고 집에 온 나는 엄마를 졸라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엄마) 형님! 애 밥 좀 먹여 보내시지~~~! (큰엄마) 뭔 소리여~~? 밥 먹었다드만? 괜한 큰엄마만 억울해진 셈입니다.
 
 


중3 때의 일입니다. 엄마 심부름으로 큰 숙모께 물건을 전해드리고 오려는데 숙모가 불렀습니다. 밥 안 먹었으면 밥 먹고 가라. 한 상 맛있게 먹고 집에 들어서는데 제가 제일 좋아하던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밥 한 그릇 또 뚝딱 비웠습니다. (엄마) 아니, 언니! 애 밥이나 먹여 보내지, 그냥 보냈어? (큰 숙모) 뭔 소리여? 밥 한 그릇 맛있게 먹고 갔는디?? (엄마) 그려? 야! 너 외갓집에서 밥 먹고 왔다며? (나)........
그 얘기는 이 나이가 되어도 기억날 때마다 늘 입에 올리는 단골 메뉴가 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큰엄마와 큰 숙모는 이미 먼 소풍을 떠난 지 오래전입니다.
 
 
 
 큰집에서의 일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흉내를 내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집 방문 시 어른들은 밥을 안 먹었음에도 먹었다고 하던 모습이 교육되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그런 이유라고 말하면 선뜻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내가 생각해도 좀 부끄럽기는 한데, 그 나이에 저는 잘한 행동인 줄만 알았지요. 외갓집에서의 일은 한참 클 나이라 그랬구나,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가 그리도 맛있더냐? 는 말로 넘어간 사건이었는데 한참 후에 비만이 되어버린 내 모습과 그때의 일이 늘 동시상영 되는 게 큰 단점이 돼 버렸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만일 내 자식이나 조카가 그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각해 봅니다. 귀엽고 흐뭇할 거 같습니다.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이쁘고 귀여울 듯합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우리도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예쁨 받으며 살아온 게 확실합니다. 대신 어른으로 자라오면서 미움이 늘고 싫증만 늘어갑니다. 따숩게 살아야 할 텐데 자꾸만 냉랭한 어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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