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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Jul 01. 2024

고상한 나무들이

고사(枯死)로 마무리되다니요.

(이미지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딱 이런 나무입니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수많은 가게 중에 가끔 제 눈길을 앗아가는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편도 2차선 길가에 위치하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이며 길가로 향한 자그마한 화단을 가진 음식점입니다. 창문은 서남향이니 해는 원(怨) 없이 드는 곳입니다. 굳이 자그맣다고 표현한 이유는, 세로는 길어야 30cm 정도이고 조금 넉넉하게 잡아주어도 40cm를 넘지 않으며 가로는 건장한 남성의 키를 조금 넘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단이라고 적었으니, 그곳은 나무나 꽃을 심을 목적입니다. 거기에는 개업 당시부터 자그마한 나무가 일렬로 심겨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떤 수종(樹種)인지 기억에 없는 걸 보니 무심히 지나쳤을 터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두 달 정도가 지나면서 나무들이 일시에 말라죽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0그루 정도 되던 나무가 두 그루만 남기고 모두 고사(枯死)하고 맙니다. 보다 못한 가게 사장님이 심은 나무는 다음 아닌 골드크레스트 윌마라는 나무입니다. 율마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손가락을 놀려댔습니다.     

 

거의 모든 나무나 꽃들이 그러하듯이 한 줄로 세워진 이 녀석은 참 앙증맞고 예뻤습니다. 연한 연두색에서 뿜어 나오는 기품 하며 색감이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면 그게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겠습니까? 예상하신 대로 중간중간 한두 그루가 서서히 마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이마저도 단 몇 달 만에 모두 그 운명을 다합니다. 가게 입장에서도 이 나무들이 보기에 거슬렸을 테고,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뽑히더니 결국 그 자리에는 근본도 없고 예쁘지도 않은 플라스틱 조화(造花)가 놓였습니다. 약간 핑크 뮬리 같습니다. 이쯤 되면 공간 활용의 극과 극을 본 셈입니다.          


하긴 가게 주인 입장에서도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묘목이나 나무를 그냥 얻었을 리는 만무하고 제법 돈을 들여 심은 나무일 텐데,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모두 말라죽다니요. 추리하자면 우선 흙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생육조건을 고려하지 않았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대기오염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같이 식물에 대해 문외한에게 그 이유를 알기란 쉽지는 않을 터, 그저 궁금증으로만 남을 판입니다. 화단의 조성부터 현재 상황까지 지켜본 저에게는 아름다운 순간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셈입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생육(生育)에 적당한 환경을 만난다는 건 하나의 복(福) 일 겁니다. 의사 표현이 불가하니 그저 마름 현상이나 시듦이 표현의 전부일 테니 자생(自生)한다는 것이 확률, 그 이상의 의미일 것입니다. 주변에 늘어가는 건물마다 녹지가 일정 비율 확보되어야 한다는 법령이 아니더라도 개인주택에도 나무를 심는 일은 보편화되었습니다. 그 보편화에 편승하고 유행에 떠밀리는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가끔은 생각거리에 해당합니다.
 
 
 글의 시작을 나무의 고사(枯死)에서 시작하였으니, 마무리도 같은 맥락이어야 하는 법은 없을 테고 실제 그리 마무리한다면 뻔한 내용이 되겠지요. 저는 우리의 정원 문화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도 참 아름답고 정갈하다고 느끼며 저마다의 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어느 나라의 정원이든 획일화되고 정형화된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후대의 평가에 따라 우리 세대의 멋짐으로 승화된다면 그다지 부정적인 흐름은 아닐 것입니다.     



아파트에 산다는 건 편리함을 누린다는 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연과 거리를 둔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울 안에 화분도 넣어보고 꽃나무도 키워보지만, 햇빛 아래, 바람 곁에 그리고 눈비와 같이 가는 삶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식물을 키우고 보호하는 듯 보여도 사실은 인간이 식물의 덕을 톡톡히 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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