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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곤 May 20. 2024

어릴 적 티브이의 추억

무엇을 보았을까?

(이미지출처:네이버) 딱 이런 모습의 티브이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릴 적 집에 TV가 들어왔다는 말은 동네 아이들이 중요한 이벤트마다 몰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를 들라면 우리 동네 아이들보다 평소 으르렁거리던 옆 동네 친구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청할 때만큼은 싸우지 않고 하나가 되어 탄성도 내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굵직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은 더욱 그러합니다. 축구, 권투 등은 물론 당시 인기가 높았던 레슬링도 한몫을 담당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70~80년대 영상자료를 접했습니다. 아마 80년대 초반의 자료로 기억하는데 몇 분을 보다가 시청을 포기했습니다.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의 질이 너무도 열악하여 상호 구분이 힘들어서입니다. 당시 기술력이나 촬영 형편과 기계의 조건을 염두에 두더라도 피사체의 농도조차 구분이 힘들었습니다. 내용의 전개조차 궁금하지 않은 그 게시물을 인내심을 가지며 시청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TV의 역사는 금성사(현, LG)의 역사와 비슷할 겁니다. 브라운관으로 불리던 화면의 크기는 지금으로 치면 딱히 비교 대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작았으며 TV의 모양도 회사 엠블럼으로 사용할 정도의 특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닫이로 된 문 안에 브라운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네 개의 다리가 받쳐있던 나무상자가 전형적인 TV의 모양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우리 세대가 TV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다름이 아닌 편성 시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당시 방송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오후 4시인가? 5시부터 시작하던 정규 방송은 이미 화면 조정시간부터 아이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애국가와 방송 시작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안내조차 한없이 길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 기다림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정 정도면 정규 방송은 모두 종료되고 밤 9시가 되면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라는 멘트는 어서 집으로 들어가라는 잔소리로 마무리했습니다. 일종의 공익광고인 셈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요즘은 영상물의 홍수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방송사의 수도 엄청나게 늘었을 뿐 아니라, 종일 방송으로 전환된 지도 오래 지났습니다. 거기에 영화산업도 활성화되었고 맘만 먹으면 영상을 접하는 일은 쉽디쉬운 일이 되었지요. 이런 현상을 보며 이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시각이 사고(思考)를 저해하지는 않을까?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등 그 생각의 폭이 의외로 넓습니다.
 
 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휴대폰으로 영상을 틀어주고 볼 일보는 일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그냥 어른이 잠시 신경을 덜 쓰려 그러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적으로 나쁘다고 몰기에는 부모의 고충이 크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영상을 보여주는 게 소통의 개념이 아니라 방치의 느낌 같아서 신경이 쓰일 뿐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생활의 방편들이 점차 편리해지고 그 도구들도 다양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예전 것들이 꼭 고리타분하고 가치가 없어졌다는 편견 뒤에는 놓치고 흘려보내는 일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보낼 건 보내는 현명함을 갖고 사는 일이 우리의 할 일이다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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