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땅 보기!
길이 어느 길이 되었든 간에 가게가 줄지어 있는 길을 일정 기간 이상 걷는다고 해서 주변의 모든 걸 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 큰 다음에야 절감하게 됩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내 관찰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근래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좀 더 친절하게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러합니다. 얼마 전 아내와 대화하던 도중 “어디서 봤지?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싶어 찾아보면 제가 다니던 길에 있던 가게의 이름이며, 심지어 건너편이나 맞은 편의 가게가 아니라 내 쪽의 가게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쉽게 떠오르는 가게나 간판은 내 쪽이 아니라 길 건너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언제부터일까요? 내 걷는 습관 중의 하나가 땅을 보며 걷는다는 거 말입니다. 이 또한 내 기억을 더듬더듬 거슬러 보니 최소한 학교 다닐 때나, 사회 초년생 때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는 이유라 할 것 없이 친구가 지나가는지, 예쁜 여학생이 지나가는지 궁금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던 나의 습관이 나도 모르게 변하여 굳어진 셈입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멋지게 둘러댈까요? 생각해 보면 이것이 습관처럼 굳어지기 시작한 시점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며 살았습니다.
땅만 보며 걷는 일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다름 아닌 등산입니다. 이는 계단을 올라가는 행위도 포함하는데, 힘들어 발걸음 하나하나를 디디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당당하게 그리고 꼿꼿하게 오르질 못합니다. 주변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어떤 꽃이 피었는지도 보질 못하며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합니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다다르는 일에만 집중하며 몸이 힘들고 다리가 퍽퍽해지는 현상에만 몰두하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고은 시인은 “그 꽃”이란 시를 이야기하셨을까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다행히 올라간 그 길을 다시 내려온다면 이 시(詩)는 성실하지만, 맞은편 산길로 내려간다면 내내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 꽃을 우리는 마음에 두며 살아갑니다. 이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놓치고 지나는 것들이 참 많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일 수도 있을 테지만, 따뜻한 감성의 눈으로 보면 아쉬움이 큰 것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주변을 해찰하듯 보며 다니는 일도 일상의 무게가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요즘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세상을 전투하듯 살아갑니다.
시간이냐, 강성이냐, 우리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굵직한 거에만 할애하며 살았습니다. 눈에 먼저 띄고 잘 보이는 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절을 산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우리 인생은 크고 화려한 것들에만 눈길을 두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 아니, 그래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꽃과 나무도 그렇고, 사소하지만 있어야 할 것들이 그러하듯이 사람도 그렇고 사랑도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