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0월의 어느 화창한 날 오후, 오늘은 수술이 조금 한가하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을 들어주시기라도 했는지 해가 아직 높이 걸려있는 시간에 가방을 챙겨 나오는 꿀맛을 맛보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사실 수술의 양이나 그 위험도에 따라 하루의 피로가 좌우되는 마취과 의사에게 이런 날은 하나의 선물입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대낮에 맛보는 거리의 향기는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그것과 사뭇 다릅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훨씬 여유롭고 느긋합니다. 손가방이나 서류를 든 채 힘들어하는 표정으로 움직이는 직장인보다, 깔깔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훨씬 예뻐 보이는 그런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대의 학생들은 그다지 한가롭고 느긋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걸어 다닌다기보다는 종종거린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학원버스 시간에 맞추랴, 다음 학원을 가기 위해 재촉하는 엄마와 실랑이하랴, 배고파서 들르는 편의점이나 제과점에서조차 메뉴 고르는 시간까지 조바심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집과 직장 근처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도 있고, 그 다양함만큼이나 많은 식당과 간식이 존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부분 가게는 어느 정도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모양입니다.
지금 언급하는 그날은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그렇게 여유롭게 퇴근하다가 신호등에 걸리고 따스한 볕을 즐기다가 별안간 바뀐 초록색 보행신호등에 그 여유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보도를 건너는 이라야 저와 고 2~3 정도 되어 보이는 여학생뿐입니다. 길지 않은 보도를 건너던 중 살짝 뒤따라오던 여학생의 발걸음 소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본 순간 여학생이 길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지나던 몇몇 분들이 덩달아 놀라 주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아마도 뇌전증(기존의 간질)을 앓고 있는 모양입니다.
혀는 깨물지 않았는지, 기도(氣道)는 막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추이를 관찰했습니다. 뇌전증 지속증(Status Epilepticus)이 아니면 장시간 계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주변 정리를 해 주었고 다행히 1~2분 뒤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옆에 계신 분께 119를 부탁드렸더니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주셨고 대원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인계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혀를 물었다면 무슨 방법으로 풀어야 했을까,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나 혼자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가장 마음에 길게 여운으로 남는 건 다름 아닌 ‘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입니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상황과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에 비추어 인간을 나눠보라면 돕는 자와 도움이 필요한 자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타자의 도움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크든 작든 남을 도와 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도 과연 있을까요? 다만 어느 쪽의 비중이 더 높으냐! 그 차이일 뿐입니다.
당시 저와 환우 사이에서 정성스럽게 도와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도 참 답답하고 아득했을 것입니다. 일일이 이름도 불러드리고 얼굴도 기억하며 예를 갖춰야 할 테지만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이런 방법밖에 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동안 이렇게 도우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는 진중하게 우리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한 날입니다. 늘 하늘에 복을 쌓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