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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의 비애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지요.

by 김욱곤
(이미지출처:생각하고 글쓰고 LIVE)나는 과연?


어릴 적의 나는 지독한 몸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리됐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이미 무엇을 할 수 없거나 늦은 아이로 찍힌 지 한참 지났습니다.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름 아닌 국민체조였습니다. “국민체조 시~작”이라는 구령으로 시작하는 이 체조는 내게 마치 크나큰 담벼락과도 같았습니다. 앞에서 시범을 보이시며 동작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만 따라 하면 될 일이지만 그것도 버거워할 정도면 치(痴)중에서도 상급에 속할 정도입니다. 두 번째 장벽은 다름 아닌 좌향좌, 우향우였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아들의 우둔함을 보다 못한 엄마의 꾸지람까지 더해지자 가뜩이나 주눅 든 저를 더욱 움츠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것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해결이 됐습니다. 무슨 비결이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요, 마치 커닝이라도 하듯 친구나 선생님 하는 걸 따라 하다 보니 몸에 익고 기억에 박힌 덕분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2학년쯤 되어 친한 친구가 하나 생긴 덕분에 놀 듯 까불 듯 같이하다 보니 몸에 익은 덕이 보았습니다. 고(高)씨 성을 가진 이 친구의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지만 아쉽게도 2학년 2학기 중간에 가족 따라 일본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아직도 그 소식을 모르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고학년이 되면 모양을 달리하는 고민이 더 생겼습니다. 운동회가 되면 5~6학년을 중심으로 차전놀이와 곤봉체조를 선보이는데 몇 주 전부터 하교 전에 연습합니다. 차전놀이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곤봉이었습니다. 도저히 따라 하지를 못하는 겁니다. 집안에 형이 있거나 눈썰미가 있는 아이들은 한 번에 따라 했고 저는 그냥 부러워하기만 할 뿐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인교습이라도 받아야 하나? 그렇다고 따라 할 수는 있을까? 싶을 무렵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곧 닥칠 배구 시합 덕분에 운동회연습을 모두 면제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못해본 거에 대한 아쉬움은 지금도 그다지 없습니다.


마지막 장벽은 다름 아닌 턱걸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내 나를 괴롭혔습니다. 도움닫기처럼 차고 올려야 겨우 하나를 할 뿐 기를 쓰고 철봉에 턱을 대려 해도 내 팔 근육은 나를 끌어올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체력장 당일, 모든 종목을 다하고 뛰었지만, 최종적으로 최하점을 받은 몇 명에 제가 포함되는 불명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내 책임이었기에 그냥 그대로 내 흑역사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며 지냈을까요?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진다고 걱정하는데, 그 분위기대로 친구들의 놀림만 받으며 괴로운 날들만 보내고 있었을까요? 나는 왜 그리도 악착스럽지 못해서 턱걸이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졸업했을까요?


사회에 나와서 내가 몸치라고, 또는 턱걸이를 못 한다고 놀림을 받고 타박받는 일은 없습니다. 대신, 업무의 효율이나 인간관계, 성과. 이런 것들을 더 높게 쳐주는 사회에 들어서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회에 적응하고 버텨내며 나를 차차 세워가는 기초를 초중고에서 배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과연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은 물론 초중고에서 배울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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