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생각합니다.
중 3이었던 어느 날입니다. 한참 친구들과 햇볕 좋은 창가 내 자리에서 쉬는 시간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짝꿍이 노트 뒷장을 펴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어라? 그런데 누가 봐도 우리말이나 영어가 아닌 일본어였습니다. 자랑스럽게 한글로 받아 적은 그 노래 가사는 내가 처음 들은 단어로 가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는 그걸 노렸을 것입니다. 친구의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주변 친구들은 두 패로 나뉘었습니다. 야! 대단하다! 와 놀고 있네!
하지만 중간에 드디어 아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약간의 일본 냄새가 나긴 했지만 확연하게 알아들을 수 있던 그 단어는 바로 Blue light Yokohama (부루라이또 요코하마)입니다. 그렇게 일본가요 하나가 우리 친구들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 곡의 인기도 점점 시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 일본 곡을 접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국가 차원에서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혹 일본 방송이 잡히던 부산 근방에서 포착된 노래들이 점점 입소문을 탔을 것이다,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정서적으로 별 이질감이 없는 데다가 당시 우리의 음악시장은 표절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빠르기로 놓고 본다면 나는 빠른 곡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미디엄 템포? 아니면 느린 곡일까?
당시 전 세계를 휩쓸던 장르는 다름 아닌 디스코였습니다. 온 세상이 디스코에 열광했습니다. Hard Rock이나 Progressive Rock에 뜨끔뜨끔 놀라던 그 강도도 아니요, 적당히 통통 튀던 운율을 가지고 있던 그 디스코 말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당연히 비지스도 좋아했고 보니 엠도 좋아했으며 한두 곡의 히트곡만 내고 사라진 가수들의 곡도 좋아했으니 말입니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을 유추할 수 있다면 저는 최소한 통통 튀는 사람이거나 외향적인 사람으로 분류될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이유는, 발라드도 제법 좋아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LP도 제법 고가(高價)였고 테이프도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던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곡을 진행자의 멘트가 들어간 채로 녹음했던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때를 살았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어렵게 녹음한 노래 위에 새로운 곡을 덮어쓰기도 했고 다음에 다시 하지 뭐! 달랜 날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녹음한 음악은 그다지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음악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그 바탕에는 잠시 트로트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Blue light Yokohama를 흥얼거리던 그 소년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도 주기적으로 트로트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 있습니다. 그 시류에 편승하는 것일까요? 제가 흥얼거릴 줄 아는 그 목록 중에는 몇몇 트로트가 자리합니다. 글쎄요, 노래를 좋아하고 흥얼거리는데 장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내가 좋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도 마치 편식쟁이처럼 가리고, 되도록 피하는 노래가 몇 곡 있습니다. 섬집아기가 그러하고 클레멘타인과 메기의 추억이 그러하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이유는 클 게 없습니다. 섬집아기와 클레멘타인은 먼저 간 막냇동생이 생각나서이고, 나머지 곡들은 가사 내용 때문입니다. 이 곡을 부르다 보면 결국 눈물로 끝을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의 모든 곡들이 하나 이상의 의미와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래서 노래나 곡들이 각각의 생명이 있고 힘이 있나 봅니다. 오늘 하루는 무슨 노래나 음악이 내 입가를 맴돌고 흘러나오게 될까요? 그래도 노래가 흐르는 하루는 감성이 찰랑거리는 하루라는 증거일 테니 장사로 치면 그다지 밑지지 않는 하루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