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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치며 배우는 생의 지혜

넘어지면 안돼요.

by 김욱곤
(이미지출처:하이닥)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날이라는 게 정확히 몇 살부터 몇 살 까지라는 정확한 기준점은 없지만 기쁜 내 젊은 날, 아무튼 천지 분간도 못하고 지내던 그런 날에 저는 상당히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날렵하다고 여기며 지냈습니다. 이는 나만의 착각은 아닌 근거는 친구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에 있습니다. 날으는 돈까스라는 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분명 둔하고 느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움직임이 제법 날렵했던 모양입니다. 100미터 달리기도 제법 좋은 기록이 나왔습니다. 대략 13초 후반~14초 중반 정도 되었으니 그다지 느린 편은 아닌 셈입니다. 단지 오래 달리기는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간혹 고등학교 때 전교생이 참여하던 단축마라톤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예 뛰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나이 들어 몸 쓸 일도 갈수록 줄고 어지간한 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짐작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민첩함이나 근력이 점점 쇠퇴하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 그런 거 같아? 물어보아도 정확한 시점은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50 후반부터는 확실히 제 운동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하긴 옛날 같으면 환갑잔치를 할 나이이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에 60은 청춘이라는 통념 때문인지 그 충격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 할까요? 주변의 지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에 모든 것에 다 뭉뚱그리기는 하지만 그냥 껄껄거리며 넘기기에는 단어의 무게가 제법 무겁습니다. 한 7~8년 전에는 발을 헛디뎌 왼쪽 발의 중족골(中足骨)이 골절되어 깁스했는데, 2~3년 전에는 눈길에 넘어져 왼쪽 복사뼈가 또 골절되어 역시 몇 주를 깁스하며 보냈습니다. 이런 화려한 병력에 정점을 찍는 일이 며칠 전에 일어났습니다. 주변의 날씨나 상황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 말입니다.


어느 화창한 겨울날, 교회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입니다. 주변이 잘 정리된 인도(人道)를 아내 아들과 함께 걷는 중이었고 저보다 앞서가던 두 사람을 따라가던 중 아무런 이유 없이 보도블록이 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클 대(大) 자로 넘어진 나는 바닥에 부딪혀 복통이 심해 곧바로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약 10~20초 후에 아픔이 가라앉자, 그때야 밀려오는 당황스러움과 창피함 때문에라도 곧바로 일어날 수 있었지만, 배의 근육과 갈비뼈 근방의 통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 집 근처의 시내에서 나는 다시 엎어졌습니다. 상황은 같았습니다. 나를 엎칠만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약간의 경사 때문에 왼쪽으로 넘어졌다는 것뿐입니다. 주일이라 문 연 병원을 수소문하여 응급실을 방문하여 엑스레이로 확인하니 다행히 골절 소견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한들 이렇게 허무하게 넘어지고 다칠 수 있단 말인가? 내내 우울했습니다. 때로 서글프기도 하고 자연스레 나이는 들게 될 텐데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떻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자문(自問) 해 보았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운동하고 정신 차리며 사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은 없겠다 싶기는 합니다. 며칠 약을 먹고 운동도 강도(强度)를 낮춰하니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무슨 연례행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아내에게 짐짓 잔소리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 드는 하나의 증거일 뿐이라 대답할 뿐입니다.




다치고 넘어지면서, 조심과 주의를 배웁니다. 그러다 보면 인생도 알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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