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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갇혀사는 것들

4와 검은색

by 김욱곤
(Get image from Blog 똑순이) 재수 없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관념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싫어하는 색(色)이 분명히 있습니다. 심지어 재수 없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그 색을 입은 물건이나 동물조차 싫어합니다. 대표적으로 검은색과 빨간색이 그러합니다. 빨간색이야 이름을 빨강으로 쓰지 않는다면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검은색이야말로 완전히 호불호의 대상 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죽음과 관련된 색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까마귀는 흉조(凶鳥)로 여겨 잘 거론하지 않습니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성어로 이미지 쇄신을 하고자 하나 그마저도 쉽지는 않지요. 덕분에 까마귀 오(烏) 자는 참 억울한 글자입니다.

장례식의 기본색도 거의 검은색입니다. 심지어 장지로 모시는 장의차도 거의 검은색이며 상주의 옷도 검은색입니다. 드라마에 보이는 허구의 저승사자도 검은색을 입습니다. 거의 검은색 일색(一色)입니다. 좀 더 아이러니한 것은 권위의 상징도 검은색이 담당하는 듯합니다. 회장님의 차는 거의 검은색이며 권위를 나타내는 곳에는 늘 검은색이 있습니다.


사실 검은색이냐, 빨간색이냐, 논란에 앞서 색이 주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이 두 색깔의 분위기는 이처럼 극단적입니다. 음침하거나 자극적이지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선입견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그랬습니다. 유달리 검은색을 좋아합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런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학교가 갈라져 도중에 자연스레 멀어지면서 연락조차 되지 않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 활용한 팀이 바로 해태 타이거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 강렬하고 강해 보였죠. 지금 기아 타이거즈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따 한 번 찾아보기로 하고, 제가 이렇게 서설이 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숫자 4에 대하여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입니다. 이유치고는 참 단순하고 허접하며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바로 앞은 3은 복(福)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숫자 4의 입장에서는 더 시샘이 날 일입니다. 실생활에서 보면 4를 쓰지 않는 건물을 흔히 봅니다. 건물의 층을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3에서 5로 바로 넘어간다든지 아니면 Four를 의미하는 F로 적습니다. 엘리베이터도 그러합니다.


실생활에서 이를 의식하는 사람은 이제 많이 줄었습니다. 관념적으로 재수 없다는 표현은 하지만 4 때문에 죽음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도 제가 일하는 부서는 4층에 위치합니다. 그에 대한 찝찝함도 당연히 없습니다. 하기야 이런 징크스는 서양에도 있다고 합니다. 13이라지요, 아마?



그냥 그런다더라, 정도로 넘기면 좋을 텐데 아직도 이에 갇혀 사는 현대인의 모습에 참 많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몇 세대가 지나야 이런 미신이나 관념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점치고 예측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르긴 몰라도 내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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