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묻던 하루
1980년 초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어쩌면 고교 시절보다 더 버거운 수업 시간에 기가 눌렸던 기억은 어쩌다 한 번씩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예과 시절에야 그나마 헐렁했지만, 본과에 진입하면서 공간 하나 없이 빽빽한 수업 시간에 숨쉬기조차 어렵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점이 높은 과목은 연달아 강의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수업이 끝나 무섭도록 후루룩 지나간 진도에 일찌감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치를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시험 당일이 되면 얼마만큼 외우고 감당해야 하는 거지? 그 중압감은 학교 다니는 내내 우리를 짓눌렀습니다.
그런 학생들의 부담감을 어여삐 여기신 교수님들의 배려로 일주일에 하루를 지정해 아예 1시간은 쪽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비워두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목적으로 월요일 1교시가 주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간을 어찌 보냈나? 싶지만 이런 투정은 언뜻 본 아들의 학창 시절 커리큘럼을 보고 아무 소리조차 못하고 접어두어야 했습니다. 과목도 몇 과목 더 늘었을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이었던 우리 시절과는 달리 통합 교육 비슷하게 진행되고 기본 술기도 익혀 국가고시에 포함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하여 언급해 보려 합니다.
오늘(2025년 5월 31일)은 한국의료윤리학회에서 개최하는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화여대에 와 있습니다. 많고 많은 과목과 내용 중에서 이를 택한 건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아예 개설조차 되지 않았던 과목일 뿐 아니라 설령 다루었다고 해도 오랜 시간 배정하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이나 무게를 따지라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사안임은 분명합니다.
오전은 존엄한 죽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 아래 살아온 우리에게는 새로운 개념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만큼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를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 날 때마다 늘 염두에 두어야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오후에는 의료윤리에 대한 강의인데 오전 강의에 비해 마음에 닿는 정도는 좀 더 감각적이었습니다. 대학에서도 학점 배당이 점점 높아질 뿐 아니라 대부분 본과 과정에 배정된다고 하니 우리 세대에게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과목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열정을 내비치는 교수님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필요한 과목이지만 소위 임상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학교 당국에서도 교원 확보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의사들도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관심이 덜 하기에 이런 어려움은 가중되는 모양새입니다. 교육조차도 경제관념으로 헤아리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가? 이부터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학부 때로 돌아간 느낌으로 기분 좋은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부디 실력 있고 청렴한 의사, 교수도 중요하겠지만 환자를 마음으로 품고 진심을 전하는 의사이기를 꿈꾸었던 하루로 오늘이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