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소한 국명에 대한 혼동을 피할 수 없었던 내게 니카는 예의 표정 없는 얼굴에 쏘아보는 눈으로 설명했다. 발트해 3국 중 하나라고.
"아, 거기. 그러니까 고르바초프 시절 소비에트 연방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했던...."
"바로 맞혔어요. 그런데, 당신은 중국인인가요?"
요코하마에 중국인이 많이 사는 것은 나도 잘 알았다. 전통 깊은 차이나타운도 요코하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니카를 처음 봤을 때 나를 중국인으로 단정한 데서 오는 기묘한 내면의 용트림을 숨기기 어려웠다.
"700년 전엔 그랬지."
"그렇담 700년 전에 다른 나라로 이사를 했군요?"
"내 직계 조상이 그때 지금의 코리아 땅으로 이사를 가셨어. 내 패스포트 겉장엔 그래서 '코리아'라고 적혀있거든."
"아, 한국인이시군요."
"한국인을 처음 보나?"
"아니, 전에 몇 번 내 가게를 오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매너가 별로 좋진 않았지만."
"한국의 인상이 별로겠군?"
"한국을 사랑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죠."
니카를 향해 처음으로 웃어 보였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것은 쓴웃음이었다.
"일본은 사랑하나?"
"일본인들은 겉으로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는 않죠."
동족이란 뭔지,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한국인에게도 장점은 많아."
"일본인과 라트비아 사람에게도 단점이 많은 것처럼?"
"바로, 그런 것처럼."
니카의 작고 앙증맞은 칵테일 바인 '알펜로제'로 나를 이끌어갔던 일본인 친구 카사하라 군이 옆에서 껄껄 웃었다.
니카는 작은 바인 '알펜로제'를 경영했다
'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많은 여행을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통한 특별한 경험들도 많을 것이다. 그가 쓴 위대하고도 방대한 저술 집이 발로 쓰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에 비교할 순 없지만 살아오면서 나 역시 여행을 참 많이 했다. 거기에서 얻어진 '특별한 경험' 또한 여럿 있었다. 나는 사마천처럼 '궁형(宮刑, 생식기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지는 않았다. 아주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나는 한나라의 7대 황제를 지낸 유철(漢武帝) 같은 무시무시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깊은 눈동자에 웃음기 없는 얼굴이지만, 매우 아름다웠던 니카를 만났을 뿐이었다.
일본이라는 서로의 타국에서.
"상당한 미인이지?"
바를 나오면서 카사하라 군이 으쓱해 보였다. 그는 진작부터 내게 말했다. 보석을 찾아냈다고.
여성의 단순한 외모를 크게 쳐주지 않는 버릇을 가진 내가 봐도 니카는 특별했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그 내면의 견고함이 문득 내 눈에 비쳤기 때문일까.
알펜로제에 들를 때 내가 주문하는 술은 늘 '갈리아노 화이트' 스트레이트였다.
캌테일을 이것저것 몇 잔 마셔봤지만, 체질상 내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니카는 어느 땐가 내 허락도 없이 레드 갈리아노에 진을 약간 섞어 내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내 눈을 쏘아보았다. 거기엔 바텐더로서의 오랜 노하우에서 비롯된 당당함까지 스며있었다.
의아했던 내가 한 모금 마셔볼 것도 없이 이미 그 맛은 후각에서부터 설득당하고 있었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기품 있는 고목을 발견한 느낌. 꿀처럼 쫀득한 액체의 달콤 쌉싸름한 레드 갈리아노에 약간 거친 맛의 진이 섞여 매혹적인 향이 배가 된 것이었다.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후 나는 니카가 황금비율로 섞어낸 진 갈리아노를 선호하게 되었다.
니카는 허락도 없이 내 갈리아노에 진을 섞어버렸다
아름다운 용모 외에도 니카에겐 형언 못할 매력이 있었다. 절대로 웃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과 사람을 쏘아보는 깊은 눈으로도 니카는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데 능했다. 사람을 금방이라도 파안대소하게 만드는가 하면, 제법 현학적인 대화를 이끌기도 했다.
언젠가, 한국인인 내가 일본 땅에서 라트비아 여자가 만들어주는 술을 마시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세상 참 좁아졌다고 말하자 니카가 말했다.
“문명의 전환기가 도래한 거죠.”
“사무엘 헌팅턴의 말인가? 아니면 재레드 다이아몬드? 시대적으로 봐서 토인비는 아닐 테고...”
“그들은 문명의 붕괴에 대해서 몇 가지 끄적거린 사람들일 뿐이죠. ‘문명의 전환’은 니카가 말한 거예요.”
대단한 당당함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말하는 니카에게서 도도함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니카는 단지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었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겨우 네 시간만 가게 문을 연다는 니카였지만, 그동안에 같이 할 손님들과의 대화 주제를 위해 굉장히 많은 독서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니카의 독서량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슬쩍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니카가 알기로 문명의 전환 전엔 이 지구 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
“서양은 활력이 넘쳤고, 동양은 잠자고 있었죠. 칭기즈칸 이 전엔 그 반대였지만.”
니카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조금 생각해본 나도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 송 시대의 활력이 쿠빌라이(칭기즈칸의 손자이자 원나라의 건립자)의 元제국을 거치면서 쇠퇴 일로를 걸었던 건 사실이니까. 반대로 서양인들은 몽고군의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 간 이후로 큰 각성의 물결이 일다가 십자군의 발호에 이어 문예부흥의 결실을 맺지 않았던가.
“그 몽골 사람이 결국 같은 아시아인들에겐 저주를, 서양 사람들에겐 축복을 내린 격이군?”
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나를 쏘아봤다. 그 깊은 눈으로 나를 조명하는 것 같았다.
거기엔 자신의 고객과 대화의 격을 맞추려 노력하는 니카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다.
“아, 내 말 뜻은 결국 그 몽골인은 같은 정복자라도 그 유명한 희랍의 호모와는 인류에게 끼친 영향에 있어서 그 질이 좀 떨어지지 않나 하는 말이지. 그 왜 있잖아. 자기 지역과 정복 지역 양쪽을 모두 이롭게 만든 그.......알렉산드로스.”
"동양이 가장 먼 곳이라는 아련한 동경이 어릴 때부터 있었거든요"
내가 그 말을 할 때,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였을 뿐. 그러나 나를 쳐다보던 니카의 눈은 새로운 빛을 뿜어냈다. 니카는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물론 알렉산더와 칭기즈칸은 정복을 하기 위한 목표부터가 달랐어요. 칭기즈칸에 비해 알렉산더는 처음부터 오리엔트와 유럽을 잇는 통상 집단을 염두에 두었던 건 사실이죠. 그랬기에 페르시아를 함락시킨 직후에 왕궁 창고에 잠자고 있던 7천 톤의 금과 3만 톤이 넘는 은을 세상 바깥으로 통용시키기도 했구요. 캬라반, 아라비아 상인, 같은 단어들이 그때부터 지구 상에 출현하게 되기도 하죠.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니카가 지금 받은 충격은 당신 때문이에요.”
나는 의아했다.
“충격? 나 때문에? 왜?”
“당신은 알렉산더를 호모라고 표현했어요. 동성애자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라는 걸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엔 그들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는 걸 말이에요. 더구나 알렉산더가 동성애자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요. 몇몇 역사가들이 자의로 해석한 말일 뿐이죠. 거기에 당신은 비하까지 곁들였어요. 니카는 적어도 당신의 심주(心柱)는 다른 이들에 비해 견고한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도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범인(凡人)이군요.”
내가 웃었다.
니카의 말은 그 어느 구석 틀린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장난기로 말했음에도 니카의 뜻밖의 반응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범인이란 무얼 말하지?”
“인식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
니카의 정의는 늘 명쾌했다. 그것은 思考의 정립이 반듯하다는 의미였다. 만만찮은 독서량과 깊은 사유 세계가 없다면 가당치 않을 통찰력이었다.
타고르의 시구가 생각났다.
‘오, 인식이 자유로운 세계로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타고르도 갖지 못했던 ‘인식의 자유’를 내게서 원한다면, 나를 너무 성인(聖人)으로 대접하는 건 아닌가?”
“그럴 뻔했죠. 어쨌든 성 정체성의 혼동은 인간 사고적 혼동과는 다른 거예요. 그렇기에 그들의 잘못은 그 어디에도 없는 거죠. 그들을 비하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저는.”
니카는 당시 갓 서른 정도의 나이였다. 북빙양에서 방금 헤엄쳐 온 사람처럼 싸늘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 내면의 온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 안엔 다부진 명철(明哲)과 혜안(慧眼)이 들어 있었다. 그 나이에 그런 것을 소유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니카에게서 그 어떤 회의감 같은 걸 찾아볼 수는 없었다.
애초부터 니카는 무표정이었다. 그 표정 없음의 그늘에 숨겨진 감정의 흐름을 들여다보기에 내 심안(心眼)은 어둡고 탁했다. 그렇기에 니카의 말이 모두 거대한 은유로 포장된 거짓이라고 해도 괴이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니카의 말을 모두 신뢰하기로 결정했다. 심지가 밝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자 앞에서 그렇게 결정하지 않을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쯤 되면 니카 앞에 마야의 영원한 신 '케찰코아틀'이 앉아있다 해도 밀려오는 궁금증의 파도를 헤쳐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정색을 하고 니카에게 물었다.
“나야 원래 범속한 인간인 거야 주지의 사실이고. 그런데 당신은 흔해빠진 보통 바텐더는 아닌 거 같은데?”
내 질문을 듣고도 니카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컵을 씻고, 바의 탁자를 정돈했다. 장미 그림이 검게 그려진 붉은 앞치마 끈을 고쳐 매기도 했다.
'하긴, 알펜로제(Alpen roze)라는 이름이 라틴어로 알프스의 장미, 라는 뜻이었지'
지금 니카의 머릿속엔 많은 생각들로 교차하고 있음을 나는 천천히 바라보았다. 니카에겐 무언가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어차피 세상엔 많은 비밀이 존재하니까.
라트비아의 항구도시 리가
"역사를 전공했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나도 학자의 길을 가고 싶거든요. "
니카는 ‘역사 속의 전쟁이 유대인의 분산(디아스포라)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국립 요코하마 대학에서.
석사? 당신 같은 고혹적인 미녀가? 내 갈리아노에 서슴없이 진을 섞어버리는 풍부한 경험의 일급 바텐더가?
“아버지는 학자였지만 완고한..... 그런 분이었어요..... 지금 제가 쓴 이 형용사 단어 카타이(かたい, 고집 세다)가 맞나요?”
“맞아. 대부분 일본인들도 이런 경우 그 단어를 사용하니까. 하지만 강코(頑固, がんこ, 완고하다)라는 단어가 더 정확하긴 하지.”
“고마워요. 어쨌든, 아버지는 제가 고향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고학을 시켰어요. 성인이 된 뒤로는 스스로의 필요를 직접 벌기를 바랐죠. 그래서 일찌감치 준비를 했는데, 바텐더 면허를 딴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사실 이런 식은 우리 가풍이기도 하죠. 그러다가 점점 내가 여자로 변해가는 걸 아버지는... ”
니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이유를 나는 처음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스스로의 능력으로 공부하는 거, 기왕이면 자유롭게 하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벗어나 내 자유를 찾고 싶은 새삼스러운 결론에 도달한 거죠. 아버지로부터 세상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일본을 택했어요. 동양이 가장 먼 곳이라는 아련한 동경 같은 게 어릴 적부터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도 내 신분으로 공부를 계속한다는 게 그리 쉽진 않네요. 그래서 박사과정을 포기했죠.”
“신분? 니카 신분이 어때서?”
분명 니카는 굳이 ‘신분’이라는 단어를 썼다. 일본어 표현방식에 익숙지 않아서일 거라고 당시는 이해했지만, 결국 그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니카의 눈은 깊다. 그 깊은 눈으로 쏘아볼 땐 서늘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때도 니카는 한참을 쏘아보더니 진 갈리아노를 다시 한잔 내밀었다. 나는 처음으로 니카의 아름답지만 깊고 차가운 눈에서 한무제의 서슬 퍼런 눈을 보았다.
한무제 앞에서 사마천은 이릉(李陵)을 변호했다. 이릉은 흉노 정벌의 명을 받고 전투에 임했던 사마천의 친구였다. 그는 끝내 흉노 군에 포위당했고, 부하 장병들의 값없는 죽음을 막기 위해 항복한 장수였다. 진노한 한무제 앞에서 ‘역적’ 이릉을 변호한 사마천에게 날아온 것은 궁형이라는 형벌이었다. 한무제는 차마 사마천에게 사형만은 언도하지 않았다. 태사령으로서 평생 황실에 충성했던 그의 아버지 사마 담(司馬 談)을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사마천은 궁형을 명하는 한무제의 타오르는 눈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 쏘아보던 니카의 눈을 나 또한 잊어버릴 수가 없다.
거기엔 담을 수 있는 질량의 한계를 넘어선 이해 못할 고독감이 표출되었고, 니카가 왜 그런 몸부림에서 자유롭지 못한가에 대한 이유 또한 나중에야 알았다.
지갑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앞에 놓을 때, 니카의 시선은 내게 있지 않았다. 니카는 좀 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내어 놓은 낡은 사진을 뒤로한 채.
중년이지만 아직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부인 옆에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있었다. 햇살 때문인지 수줍게 찡그린 미소가 소년의 예쁘장한 얼굴을 더욱 귀엽게 보이게 했다. 가만 보니 니카를 빼닮은 얼굴이었다. 특이하게도 소년의 왼쪽 귓불에 검은 반점이 선명해서 마치 귀걸이를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남동생이 니카를 닮았군 그래. 어머니도 미인이시군.”
니카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먼 곳의 아늑한 쉼터에서 니카의 가족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안에서 니카의 고독감에 대한 발로를 이해하려 애썼다. 니카의 말처럼 지구 상에서 가장 멀리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 외로움을 난 이해한다는 어설픈 믿음을 가지려 했다.
나는 그 외로움을 이해한다는 어설픈 믿음을 가지려 했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컵들을 정돈하고는 니카가 돌아섰다.
“그건 저예요. 어머니는 저를 사내아이로 낳아주셨거든요. 자 보세요.”
니카가 어깨선까지 늘여진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왼쪽 귀를 보여주었다.
사진에 빠져있던 내가 니카를 봤을 때, 믿을 수 없게도 그 얼굴에 미소가 서려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희열의, 또는 충만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애달픈 미소였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귓불에 붙어있던 니카의 검은 반점을 보면서도 끝내 믿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과 함께.
이후 나는 알펜로제에 가지 않았다.
남성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영혼으로 살아온 니카의 ‘고독한 [신분]'을 맞닥뜨린 내 마지막 배려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카가 좀 더 ‘인식이 자유로운 곳’에서 살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니카를 위해 결코 기도하지는 않았다. 니카는 내 기도 없이도 충분히 자기 길을 살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니카의 본명을 알지 못한다. 니카는 자신을 ‘니카’로 불리길 좋아했다. 니카는 이름을 스스로 지은 것처럼 인생 또한 스스로 그려 나갈 것이다. 니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해 가을, 니카가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알펜로제를 정리하고 독일로 떠났다는 말을 카사하라 군이 전했다.
우린 요코하마 만(灣) 앞의 공원 벤치에 앉아 갈리아노 레드가 담긴 잔을 들어 우리네 범인(凡人)들을 위해 건배했다.
"인식의 자유로움을 위하여!"
우리 둘은 그 장미 꽃병처럼 기다란 병을 비우고는 만에서 멀어져 가는 배 한 척에 작별을 고했다.